더위가 수그러 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문을 열면 더워서 바로 닫았는 데, 이제는 열어놔도 불편함이 없다. 습한 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서 팔에 생기로움만 없을 뿐 이른 아침을 즐기는 내 상태는 그대로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지금껏 들어 본 적 없는 소리가 들린다. 큰 새의 짖는 소리에 이어서 작은 새가 지저귀며 답한다. 날이 밝아 오면서 새소리는 매미소리에 잠기고, 점점 시끄러워지면서 결국 시끄럽고 어정쩡한 바깥공기보다 산뜻한 에어컨 바람을 찾게 된다.
여름에 에어컨이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예전에는 은행이나 백화점에나 가야 시원한 바람을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에어컨 없는 집을 찾아보기 어렵다. 고향집에 가도 장식용으로 에어컨을 전시해 놓았다. 늦게 들어온 문물이다 보니 오래되신 어른들은 아직도 사용할 때 부담감을 가진다. 사실 에어컨을 원 없이 틀어 놓고 사는 사람도 흔치 않다. 에어컨은 전력 소비가 크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많이 나온다는 인식이 모든 사람에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딱히 전기세가 저렴해진 것은 아니다. 에어컨 성능이 좋아지고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소비전력은 줄었다. 에어컨의 큰 장점 중에 하나는 제습이 된다는 거다. 인간이 느끼는 불쾌감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 불쾌지수인데, 온도도 중요하지만 습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러다 보니 에어컨은 온도를 낮춰주면서 제습까지 해주기 때문에 작동시키는 동안 불쾌함을 줄여주는 큰 역할을 한다. 문을 닫고 에어컨 바람을 선풍기가 날려버리니까 시원하면서 산뜻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전기세는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걱정이 하나 더 있다. 냉방병이다.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지 않고 조금만 더 시원하게 있으면 배가 아프고 어지러우며 심할 때는 두통까지 생긴다. 그렇다고 온도를 다시 높이면 불쾌해지고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하는 찝찝한 기분이 든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당하게 조절하는 게 쉽지 않다. 에어컨이 없을 때도 잘 지냈는데, 이제는 에어컨이 없는 여름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내가 일 하는 장소는 통합형 에어컨이 24시간 작동되다 보니 항상 시원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활동하는 모든 공간에는 온도는 25도 이하이며 습도는 50% 아래를 유지하는 것 같다. 그래서 웃으면서 지내나 보다.
그러면서도 땀 흘리는 것이 좋다고 매일 땡볕에서 운동을 한다. 어떨 때 보면 땀이 많이 안 난다고 운동을 더 하는 경우도 있다. 땀을 흠뻑 적셔야 개운해진다. 그러고 보면 사우나의 존재도 웃긴데, 코로나로 못 가는 현실은 더 어이없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정반대로 느껴지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더울 때는 찬 바람이 그립고, 시원한 에어컨을 만끽하면서 전기세를 걱정하며, 에어컨을 끄면 온도가 높아져 끈적거림을 싫어하면서도 땀을 더 흘리고 싶어 하는 나는 그때그때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생각을 무조건 소신 없음으로 부정하면 안 된다. 갈대처럼 바람 가는 대로 흔들린다고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수 있다. 요즘 날이 더워지니까 주변에서 큰 소리가 많이 들린다. 전후 사정을 잘 확인하고 차분하게 지켜보면 마찰을 줄일 수 있다. 답답하고 불쾌한 기분은 에어컨으로 수그러 들게 하고 차분하게 앉아서 조금 더 느리게 생각하면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글을 누구에게 권유하는 것이 아니고 답답해하는 나에게 한번 더 들려주고 싶다.
열심히 작성하던 글이 시기를 놓쳐서 버려진다. 올림픽시기에 스포츠에 집중했더니 마케팅 전략에 실패했다. 아쉬움에 발행하고 버려지기 전에 글을 소생시키며자기만족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