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의미를 부여하여 행복을 더하는 게 좋다. 삶에는 다툼과 사랑이 공존하기 때문에 다툼으로 인한 아픔과 슬픔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사랑으로 인한 기쁨과 행복은 의미를 부여하여 살아가는 동력으로 만들고 싶다. 그렇게 살다 보면 더 큰 사랑이 피어나는 선순환이 되고 행복만 가득해진다. 덕분에, 작은 것에서 오는 행복을 조금 더 크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고, 그 결과 평범한 연애 이야기와 흔한 결혼 이야기도 조금 특별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늦게나마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지금이라도 소중한 감정을 남길 수 있어 행복하다. 여름이 일찍 찾아온 올해 유월, 일산 독립 책방 '너의 작업실'을 만나서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오 개월 정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글을 쓰면서 글벗과 많은 추억을 쌓고 있다. 덕분에, 생각만 하고 있던 아내와 사랑이야기도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몇 달 전 우연히 알게 된 브런치를 통해 글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글벗도 많아졌다. 더군다나 발행한 글을 묶어서 책으로 만들 수 있는 것에도 감사한다. 계속되는 우연 속에서 운명이 된 것처럼 아내와 사랑이야기도 브런치 북으로 탄생하는 날에 의미를 부여하여 행복을 더하였다. 정확하게 십일 년 전 오늘 사랑의 결실로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날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브런치 북 '레바논, 전쟁터에서 피어난 사랑'의 주연은 당연히 내 운명 아내이다. 조연은 내가 하고 싶었는데, 레바논에서 프러포즈를 할 때처럼 아직도 우리 사랑이 서툴러서 많은 조연들이 도움을 줬다. 멀리서 응원하는 영덕과 동명 6진 전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지금 함께하는 동료와 다음 달부터 같이 2년을 보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응원했다. 글쓰기를 삼 개월 이상 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친구들 원쓰리와 이역만리 타지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필과 훈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투박하고 거친 글에 지적보다는 응원과 격려만 남겨주는 너의 작업실 글방 친구들과 브런치 글벗도 소중한 힘을 더해줬다. 실질적으로 하숙생을 키워주신 장인 장모님과 존재만으로 도움이 되는 부모님도 조연이다. 유일하게 글을 방해하는 두 딸 세영과 세이는 내가 혜남이 되는 길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오로지 세아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글을 쓰는 내내 건강하게 방해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덕분에 짧은 연재를 마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함께 해준 아내 임혜진 소령께 감사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결혼 십일 주년 축하하고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자!
2021년 10월 23일
덧+) 부록에는 겹친 우연과 결혼 준비 그리고 신혼여행에 대한 소소한 것을 더 담았다.
너의 작업실 글방 친구 캘리그라피(캘리그라피숲)
부록
우연이 겹친 운명
선후배 관계인 우리는 해외에 나가기 전 단체 교육을 받는 시기에 눈이 맞았다. 출국 전 두 달 정도 교육을 통해서 현지 문화와 역사, 현지에서 해야 할 일을 준비하고, 구성원 간의 팀워크를 쌓으면서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사람들은 함께 생활한다. 교육 중 쉬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에 짧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고 부족한 부분을 도와가며 동료애를 다진다. 영덕의 말대로 선남선녀인 우리는 아내 진급 행사 때 내 계급장을 빌려주면서 말문을 텄다. 그러고 자연스럽게 쉬는 시간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간단한 내기를 통해서 출국 전 두 번 있는 외박 기간 중 첫 번째 외박 복귀 때 밖에서 함께 식사 약속을 했다.
각자 첫 외박을 잘 보내고 복귀 3시간을 앞둔 상황에 우리는 부평에서 만나 닭갈비를 먹고 커피숍에서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선후배에서 친구로 관계가 가까워졌고, 서로에 대한 호감이 조금 생겼다. 당시에는 없던 용어인 썸을 타는 수준이었다. 두 번째 외박 전에는 더 친해졌고, 특별한 계기를 맞이한다. 그해 지나간 여름에 다녀온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신기해하며 대화를 이어가다가 다른 날에도 다른 지역에서 같은 시간 서로 모른 채 함께 있었다는 우연이 겹쳐지면서 운명을 확신했다. 서로를 운명으로 직감하는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연히, 마지막 외박을 함께 보내기로 하고 썸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한주 차이를 두고 각자 출국하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였다. 게다가 출국이 임박했기 때문에 평일은 바쁜 일정으로 인해서 눈코 뜰 새 없었다. 운명을 직감했지만 함께 할 시간이 없다 보니 시간이 더욱 소중했지만, 남들처럼 막 시작한 연인이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누릴 수 없었다.
흔한 결혼 준비
보통 결혼 준비는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승낙을 받은 뒤 시작한다. 아내와 운명적인 관계를 확신한 다음 교육받는 장소에서 가깝게 사시는 우리 부모님께 먼저 인사드렸다. 두 번째 외박 날 저녁식사 때 아내를 소개하고 결혼하겠다고 바로 말씀드렸더니 부모님과 누나, 매형은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이후 모든 생활을 혼자 알아서 했고 결혼마저도 스스로 한다는 것에 대견스러워했다고 후일 전해 들었다. 물론, 아내 스펙과 특유의 친근감이 뒷받침을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평소 전라도 사람에 대해서 안 좋은 평을 많이 하셨는데, 매형과 아내를 각각 전라남도 화순과 광주광역시 태생으로 맞이하면서 평소에 욕해서 벌 받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하지만, 매형이 워낙 잘해서 좋은 인식으로 변해있던 것도 한몫을 했다.
문제는 아내 집이었다. 물리적으로 인사드리러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레바논에 있는 동안 이메일을 통해서 인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가 먼저 새로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 몇 번 이야기를 했고, 내가 큰 용기를 내어 장인어른께 이메일로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아쉽지만, 그 메일을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다. 편지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아내를 사랑하게 된 이유와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는 내용으로 보통 처갓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장인어른과 술 한잔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였다. 며칠 후 답장이 왔고 장인어른께서는 글에서 느껴지는 내 자신감이 마음에 든다며 결혼을 승낙했고, 더불어 결혼 날짜까지 알아봐 주셨다. 당시 나는 31살이고, 아내는 26살이라 결혼하기에는 이른 편이었지만 쉽지 않은 결정임에도 흔쾌히 승낙하신 것에 대해서 늘 감사한다. 당신께서도 지금까지 당시 결정을 매우 만족한다. 참고로 장인어른은 대기업 인사과장을 십여 년 이상 했기 때문에 사람 보는 안목이 있다. 아부가 아니다. 난 나르시시스트도 아니다. 사실, 사전에 아내가 많은 이야기를 미리 전달했고, 장인 장모님께서는 똑똑한 아내가 선택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높은 신뢰를 주셨던 것으로 판단한다.
더 큰 문제는 결혼 날짜를 10월 23일로 정해 주셨는데, 귀국이 8월이라 많이 촉박했다. 다행히 현지에서 인터넷 사용은 가능했기 때문에 모든 준비를 인터넷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예식장 섭외부터 웨딩촬영 등 세세한 부분까지 사전 계약을 하고 귀국 후 휴가기간 동안 둘만의 여행과 결혼 준비에 매진했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 시간이 16시 밖에 없었고, 함께 레바논에 있던 사람들에게 손수 만든 청첩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손수 만든 투박한 청첩장
신혼여행 예행연습
귀국 후 20여 일간 휴가를 부여받는데 둘은 모든 스케줄을 함께 했다. 장인 장모님께 먼저 들러서 인사를 하는 게 예의지만, 우리는 본능에 충실했다. 새로 시작한 연인이 6개월간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 고문받는 것과 흡사할 것이다. 그래서 양가에는 거짓말을 하고 둘만의 신혼여행을 몰래 계획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둘만의 비밀여행이 계속된 것 같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둘만의 소중한 여행을 다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비밀여행 중이다.
결혼 전 다녀온 신혼여행 장소는 도쿄와 제주도였다. 도쿄는 첫 해외여행이었지만 레바논에서 결혼 준비와 병행하다 보니 준비 없이 헐레벌떡 다녀왔다. 정말 신혼여행처럼 결혼식 끝나고 정신없이 여행하며 둘만의 사랑만 확인하고 관광이나 휴양보다는 서로를 보면서 웃고 즐기고 행복했기 때문에 여행지에서 추억은 많지 않다. 다만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에 프러포즈 영상에도 함께 여행할 장소를 사진으로 첨부했고, 약속했던 배경에 우리 둘만 새롭게 그리는 추억을 간직했다. 당시 일본 여행이 아쉬워서 매년 한두 번씩 꾸준하게 다녀왔다. 그러다 보니 일본 문화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주변에서 왜 자꾸 일본만 가냐고 핀잔을 준다.
도쿄에 이어서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그곳에서도 추억은 많지 않다. 다만, 제주도에서 함께 보냈던 저녁 풀 파티는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인피니티 풀 뒤로 보이는 캄캄한 제주 바다는 어선 불빛이 빛나고 그 위로는 별과 달이 소중한 빛을 우리에게 건네줬다. 그날 주인공이 우리라는 것을 알려주듯 유독 반짝였고, 별빛에 비치는 아내는 아름다웠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 은은한 노란 조명에 비치는 투명한 수영장 물과 리조트 상호가 바다로 흩어질 것처럼 흐늘거렸고 눈앞에는 양 어깨가 곱게 보이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 가수가 피아노와 현악기 선율에 맞춰 재즈를 부르고 있었다. 칵테일과 맥주를 가볍게 마신 우리는 노래와 분위기 그리고 술에 취하고 서로에게 흠뻑 빠져서 혼미해졌고, 그렇게 우리 신혼여행 예행연습은 마무리했다. 결혼 직후 다녀온 신혼여행은 결혼 한 달 전에 웨딩 페어에서 필리핀 세부로 급하게 계약했고, 출국 직전 아내는 햄버거를 먹고 탈이 나서 고생만 하다 돌아왔다. 어쩌먼 우리 신혼여행은 예행연습이 본 편이었을 수도 있다.
아쉽게도 다음 부임지가 서울로 정해졌고, 아내는 포천 일동으로 결정됐다. 결혼 전부터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지금껏 주말부부로 지낸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한 소중한 감정이 더 오래가고, 꾸준하게 두세 달에 한두 번씩 둘만의 비밀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장소, 우연이 두 번째 반복되었던 그곳, 강원도 양 떼 목장으로 우리는 함께 떠났다. 1년 전, 서로 운명인지도 모르고 지나쳤던 그곳에서 정확하게 1년이 흐른 뒤 함께 할 수 있었다. 레바논 전쟁터를 거쳐 사랑의 꽃을 피우고 돌아온 우리는 행복한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함께한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운명의 장소에서 둘이 하나가 된 것을 기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