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피어난 사랑
10화 D-day(프러포즈)
디데이(D-day)
(출처: 표준 국어대사전)
군사 작전 계획에서 공격을 시작하기로 예정한 날.
제2차 세계대전 미영 연합군이 프랑스 북부를 공격을 위해 노르망디에 상륙을 시작한 1944년 6월 6일.
처음 운명을 직감 한 순간 목숨까지 함께 하겠다는 결론에 닿았기 때문에 방향성은 명확했다. 다만, 함께 가기 위해 지금껏 걸어온 길을 정리하고 마주할 준비가 필요했다. 달려가고 싶었지만, 함께 산책하듯이 평생을 걷는 게 멋진 삶이라는 생각 했다. 오십 년 이상 함께 걸어야 할 텐데, 찰나에 느낀 감정이 아니고 평생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떨어져 있는 순간에도 같은 시간 같은 곳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고 싶었다.
처음 만난 지 두 달이 지났고, 사귀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순차적으로 출국하기 때문에 우리는 일주일간 떨어져 지냈다. 내가 먼저 출국했고 내 운명이 뒤따랐다. 더군다나 레바논에 가면 분명 손도 못 잡을 텐데, 한창 사랑이 싹트는 시기에 감정이 짓밟힌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의 표현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완벽한 계획'에 따라서 선물과 함께 작은 엽서를 하나씩 만들고 자작시나 짧은 편지글을 함께 전했다. 어쩌면 그때 글을 처음 쓴 것 같다. 지금 와서 읽어도 마음이 설렌다. 특정일에 맞는 메시지를 미리 생각하고 일상에서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면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예를 들어 part #3 50일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준다며 헤드폰을 선물하기로 했는데, 일주일 전부터 대화 중에 귀, 듣다, 음악 같은 단어가 나오면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내 운명에게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했다. 그렇게 반복한다면 머릿속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들어야겠다는 공간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내 운명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메시지를 받는 순간 '아, 이래서 그런 말을 했었구나'라며 감탄해줬다. 지금 와서 보니 그게 복선이고 메타포였다. 사랑을 위한 내 글쓰기 본능이었다.
레바논은 빛이 강하게 내리쬐기 때문에 선글라스는 필수였다. 백일 기념일에는 멋진 선글라스를 선물하고 싶었는데, 이태리 PX를 방문하여 구입할 수 있었고, 6번째 선물인 시계까지 함께 구입했다. 부족한 것은 꽃과 반지 그리고 200일 가까이 함께 지내며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만든 프러포즈 영상이다. 기획 단계에서 프러포즈 간 영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영상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당연히 아무도 모르게 진행했고 무엇을 담아야 할지 콘티와 구성을 위해서 매일 밤 한두 시간씩 연구하며 제작했다. 파병 중간에 결혼식 날짜까지 정해졌는데, 귀국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인 10월 23일이다. 거기에 의미를 더하여 영상을 10분 23초로 제작하기로 결정하고 200일간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다. 운명을 위한 내 퇴고 본능이었다.
모든 게 갖춰진 상태에서 '그날'이 왔다. D-day는 유례는 군사용어이다. 작전을 계획하는 당시에 정확한 날짜가 지정되지 않았거나 보안이 필수적인 경우에 사용하는 군사용어로 일상에서 특정일을 말할 때 가볍게 사용하는데, 이제는 군사용어라고 말하기 무색할 정도이다. 파병을 간 모두에게는 조국과 가족이 기다리는 귀국일이 D-day였지만 우리에게는 '그날'이 D-day 였다. 사실 준비하는 과정은 내 운명도 몰랐기 때문에 나만 D-day를 다르게 생각했다. 귀국을 며칠 앞둔 D-day에 진짜 조연들에게 열애 사실을 공개했다. 당연히, 영덕에게 먼저 상의했고, 상의 과정에서 영덕에게 비밀로 했던 결혼식 날짜와 손수 만든 청첩장도 들이밀었다. 증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했다. 영덕은 지금껏 약속을 지켜준 것을 고마워하며 흔쾌히 수락하고 며칠 뒤면 귀환하니 모든 것을 공개하자고 했다. 상부에는 자신이 알릴 테니 주변을 돌보라고 했다. 이제는 '그일'만 남았다. 마지막으로 비르나가 현지에서 아프리카 상인에게 어렵게 구매한 반지와 꽃을 가져다줬다. 영상도 완벽하게 준비했고, 진짜 조연들도 함께 했다. 그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공간, 내가 늘 필요할 때만 찾는 '그곳' 성당에 모였다. 내 운명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숙소에서 성당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뻔한 이벤트가 시작됐다. 내 운명이 아무도 없는 성당에 앉았고, 함께 부르던 노래가 흘러나오는 10분 23초짜리 프러포즈 영상이 시작했다. 첫 화면인 '당신은 운명을 믿습니까?' 란 질문과 함께 아내는 폭풍 오열을 했다. 아내를 달래기 위해 숨어있던 진짜 조연들이 하나둘씩 모였고, 영상은 계속 돌아갔으며, 다 같이 영상을 보면서 훌쩍였다. 매일 밤 영상을 편집하는 나도, 그걸 지켜본 운식도, 나와 내 운명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진홍도 감정이 고조됐다. 영상에는 200일간 함께 했던 순간을 노래와 글, 사진으로 고스란히 담았다. 내 생애 그 영상보다 완벽한 작품은 만날 수 없을 거다. 1부는 우리의 많은 우연이 겹치면서 운명이 된 상황을 이야기했고, 2부는 지금껏 운명에게 전해 준 사랑과 우리의 미래를 그렸다. 당연히 절정 부분에서는 진부한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라는 문장을 크레디트에 올렸다. 그러면서 반지와 꽃을 들고 내가 등장했다. 지금 생각해도 뻔한 영화 같았다. 대신 영화 속 주인공은 내 운명이고 조연은 나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내 운명 눈에는 더 영화 같았는지 너무 울어서 행사 진행이 쉽지 않았다. 하여튼, 내 프러포즈는 거기서 끝나고 주사위는 내 운명에게 넘어가 있었다. 한참 울다가 멈춘 아내 대답은 '고. 맙. 습. 니. 다.'였다. 결혼하자는데 고맙다니, 정답은 아닌 것 같았지만, 마치 자신들이 프러포즈를 하는 것처럼 조마조마 한 상황에서 긴장했던 모든 사람들은 고맙습니다 한마디로 웃음꽃을 피우며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예전 광고에서 '따봉'을 외치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실컷 웃고 떠들면서 우리의 소중한 D-day는 행복하게 끝났다.
그리고 귀국하여 한 달 뒤 10월 23일 오후 4시에 영덕의 주례와 진짜 조연들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행복하게 결혼했다. 결혼을 11주년을 기념해서 새롭게 시작한 십 년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IO234으로 제목을 정했다.
* 군 보안성 검토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