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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Sep 17. 2021

매일 이별하는 사람들

'회자정리 거자필반'


 흔한 말. 어디에서 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수없이 사용한 고사 명언이다. 떠나는 사람과 함께하는 마지막 자리에서 늘 하는 진부한 말이다. 몇 해전부터 연말 인사이동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함께 했던 동료가 추석보다도 이른 시기에 떠난다. 코로나로 인해 함께 식사도 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몇 년간 동거동락한 동료가 떠나기에 방역대책을 강구한 상태에서 배달음식으로 어렵게 식사를 했다.




 식사자리에서는 알고, 자주 들었고, 수시로 주고받는 말이 넘쳐난다. 그렇게 우리는 떠나는 사람과 마지막 자리에서 흔하고 진부한 말을한다. 그동안 함께해서 좋았고, 조금 아쉽다. 앞으로 추억을 곱씹으면서 다시 보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말의 세기와 수식어만 조금 차이날 뿐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진부하고 흔한 말이 내게 다가올 때, 이상하리 만큼 매번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같은 책이나 영화를 여러 번 접하면 학습되어 감동의 크기가 작아지기 마련인데, 사람과 헤어짐의 퍼포먼스는 충분히 마음의 준비도 하고, 전에 들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해서 듣지만 여전히 가슴을 조여 오고, 눈물을 머금게 한다. 특히, 어제는 유독 아쉬웠는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주가 달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내 한마디에 웃고 울었던 한 해였다. 나 역시 누군가의 눈빛, 행동 그리고 건네주는 말에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상대방과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서 가슴속에 감정이 쌓이고, 좋든 싫든 쌓인 감정은 머릿속 깊은 곳에서 나타난 이성을 만나 팽팽한 줄다리기 시합을 한다. 어떨 때는 감정이 이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철저하게 이성이 승리하기도 한다.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서 표현되는 행동과 말은 크게 달라지는데, 미묘하게 융합되어 나오는 표현은 결국 상대방 감정을 변화시키거나 더 쌓이게 만든다. 이러한 뫼비우스의 띠 같은 순환이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끊어지게 되는데, 그게 이별이다. 이별 후에는 좋고 싫은 감정을 말로 표현하거나 행동할 필요도 없는 관계가 된다. 아니 관계조차 끊어진다. 


 멀어지면 주고받는 감정이 줄어들기 때문에 각자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것들은 조금씩 수그러든다. 그러다 감정이 없어지면 남이 되는 현실이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가끔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지칠 때면,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처럼 감정 불능증 환자가 되고 싶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했다. 부질없는 생각의 끄트머리에 남게 되는 건 지나간 시간과 눈물, 그리고 후회뿐이다. 아니면, 추억이다.


 술이 들어가고 거나하게 취하자 떠나는 동료는 아쉬운 마음에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나 역시 술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것이 내 몸에서 나오고 들어간다. 취해서 떨리는 건지 아쉬워서 흔들리는 건지 애매모호한 상황이 이어질 때 즈음 우리의 이별 퍼포먼스를 걱정해주는 규정이를 위해서 머릿속에 가득 찬 이성을 등장시킨다. 술을 마셔도 당장 임무수행이 가능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배웠고, 얼마 전 누군가 시진핑이 똑같은 말을 공식석상에서 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시진핑을 예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우리는 취해서 비틀거릴 여유는 없다. 그렇게 아쉬운 퍼포먼스는 아쉬움을 남기고 마무리했다.




 비슷한 시기에 많은 사람이 떠나지만, 연중행사이다. 벚꽃이 필 때 떠나는 사람, 매미가 귀청을 찢을 즈음에 멀어지는 사람, 차가운 공기가 콧 속으로 들어오는 시기에 이별하는 사람, 그리고 오늘, 그렇게 우리는 매일 이별을 한다. 스무 해 넘도록 수백 번 경험을 했지만, 아직도 준비하지 못한 나는 매 순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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