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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Sep 21. 2021

네 글자 마음 찾기 운동

두 딸과 함께하는 뒤늦은 MBTI

"선배님은 분명 ETPI 일거야!"

"아니야. ISOF 같은데, 선배님! ISOF 맞죠?"


 MZ들이 나에게 어려운 질문을 한다. 대충 아는 건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곤란하다. 그냥 저리 가 주세요라고 하고 싶은데, 평소 친절한 선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웃으면서 조금 아는 척만 했다.


"MBTI 아직도 하냐? 예전에 애들 관리할 때 많이 했는데, 한참 떴다가 요즘 수그러 드는 거 아냐?"

"그래서, 어떤 유형이세요?"


 역시, 안 통한다. 오랜 시간 같이 지내다 보니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바로 이실직고했다.


"사실 나 잘 몰라. ETPI, ISOF 같은 것도 모르겠다. 예전에 검사했던 것 같은데, 기억도 안 나고 요즘은 귀찮아서 안 했어. 혈액형은 A형이야"


 친절한 우리 후배가 ETPI, ISOF는 없다고 일러주며, 무료 성격유형검사 어플을 조용히 카톡으로 보내준다. 다음에 시간 날 때 하기로 미뤄두고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이 다시 얘기한 ETPI, ISOF 비슷한 글자도 모르겠다.  그만큼 네 글자 마음 찾기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명절 연휴를 두 딸과 실랑이하면서 보내다가 MBTI가 생각났다. 침대에 누워서 카톡 링크를 통해서 들어갔고, 옆에서는 첫째 딸이 모여라 동물의 숲 배경 음악으로 내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간간히 새로 획득한 아이템을 친절하게 하나씩 설명하면서 검사 진행을 방해한다. 짧은 검사시간인데, 자는 줄만 알았던 둘째도 소리를 지르며 등장한다. 악연이다. 수십억 분의 일로 부모와 자식이 되어준 인연은 고마운데, 하필 뭐 좀 할 때면 영화 속 악당이 등장하는 것처럼 짜잔 하고 나타난다. 나중에 기획자나 연출가를 시켜야겠다. 둘째는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내에게 긴급구호 요청을 하고 동물의 숲 브리핑만 참으면서 계속 진행한다. 요상한 문장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 비슷한 질문 세례를 받으면서 내 마음을 찾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내 마음을 찾으라며 나를 놀리는 듯한 문장을 하나둘씩 풀고 나니 결과가 나왔다. 'ENFJ-T 정의로운 사회운동가'이다. 2% 정도로 희소하다는 것에 불쾌해하며 괴상한 복장을 한 초록색 남자 밑에 설명글을 읽어 보려고 하지만, 동물의 숲 리포터가 씨름을 하자고 한다. 


사람을 놀이기구로 생각하는 둘째


 허겁지겁 캡처는 했는데, 자세한 설명은 확인할 수 없었다. 아내에게 카톡으로 링크를 보내주고, 난 씨름에 집중했다. 사실, 설문에 답하는 동안 아이들의 방해 공작과 비슷한 문장으로 여러 번 질문하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답한 게 몇 번 있기 때문에 결과의 신뢰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침착하게 풀어볼 만한 흥미는 느끼지 못했다. 아내는 두 번 했다. 둘째의 강력한 공격으로 한번 차단됐고, 결국,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악당과 리포터에게 둘러싸여 마무리했다. 신기한 건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부모가 다른 일에 집중하면 달려든다. 신이 그렇게 만드셨나 보다. 아내도 ENFJ라고 말한다. 흔하다고 해놓고 주변이 다 ENFJ 인 것 같다. 바빠 죽겠는데 전부 사회운동만 하라고 조장하고 있다. 어플의 출처가 의심스럽다.




 내 마음을 찾는 게 참 힘들다. 많은 연구를 통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만들었고, 반복되는 비슷한 질문세례에 가끔은 문장을 이해 못하고 답변해도 친절하게 네 글자 알파벳으로 분류해 준다. 거기에 그럴싸하게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고 포장까지 해준다. 사회 운동에 관심도 없고 할 생각도 없으며, 둘째 똥 치우기도 바쁜 사람이다. 결국, 아직까지 세부 내용을 안 찾아봤다. 네 글자 영어도 계속 헷갈려서 캡처 화면으로 다시 본다. 가만히 앉아서 따져보면 알파벳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 개념 정리가 될 텐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내가 상황을 의식적으로 거부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MZ에서 탈락 이후 삐뚤어졌던지 선입견이나 편견을 싫어하고 검사에 대한 불신이 큰 이유로 내 마음을 기계에게 의존하지 않겠다는  일거다. 하여튼, 다음에 MZ들이 물어보면 난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고 답변할 수 있는 명분은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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