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 속에서 핀 고귀한 사랑

프롤로그

by 혜남세아

어렸을 적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인상 깊었던 장면이 여럿 있다. 그중에 30년 전 방영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중 한 장면이 유독 인상 깊다. 남녀 주인공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살이 찢기는 아픔 속에서도 서로를 끌어안으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장면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전반적인 줄거리와 다른 장면은 가물가물하지만, 생생하게 기억에 남은 유일한 장면이다. 아마도, 가슴이나 뇌 속 어딘가에 깊게 새겨진 게 틀림없다.


인간은 고대 문명으로부터 만 년간 사랑과 다툼 속에서 진화하며 일생을 살다가 떠난다. 삶 또는 평생이라고도 하는데, 그 속에는 사랑과 다툼이 존재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하지만, 다툼은 사랑을 멀게 하며 크고 작은 마찰 때문에 생겨나고,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자신과 싸움으로부터 수천만 명 목숨을 앗아간 세계대전까지 모든 다툼은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보다 다툼이 더 큰 영역일 수도 있다.


사랑 속에서 다툼이 발현하기도 하지만 다툼 속에서 사랑이 피어나기도 한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피어난 사랑보다 다툼 크기가 커질수록 어렵게 타오른 사랑이 더 애절하고 고귀해진다. 심리적 불안과 생존에 대한 욕망이 폭발하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희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에서 전쟁과 관련된 사랑 이야기가 회자되고 관심이 간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 깊은 울림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드라마 속 깊은 울림을 간직했던 나에게 전쟁터에서 운명 같은 사랑이 다가올 줄 꿈에도 상상 못 했다. 현실이 되었지만, 스스로 믿기 힘들 정도였고, 주변에서도 드라마나 영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라며 응원했다. 단지, 함께한 장소만 달라졌을 뿐인데, 축복받는 사랑 이야기가 된 것에 늘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글 속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사실이다. 2009년 11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직접 경험한 많은 일을 회상하면서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