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Nov 19. 2021

이백(二百), 숫자에서 오는 평범함

 가끔은 어떤 글을 쓸지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쓰고 싶은 단어와 문장 심지어는 단락까지도 막힘없이 생각난다. 그런 날은 글이 잘 엮이고 마무리하면 뿌듯함이 남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순간 감정과 생각을 고스란히 글로 옮긴다. 스치는 단상을 하나씩 활자로 옮겨가면서 문장을 만들고 단락을 구성한다. 그렇게 5개월 동안 잡글이 만들어졌다.


 점점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커진다. 슬럼프에 빠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들었는데, 글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펜을 놓는 시기가 가까워진 것 같다. 글밭에서 뛰어놀고 싶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글에 심취했는데, 조금씩 글이 떨어져 나갈까 봐 두렵다.


 매달 초 글 모임에서 이번 달에 다룰 소재를 정리하고 브런치와 글방 친구들의 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생각과 감정이 피어오르면 거기에 취해서 글을 만든다. 아내와 대화를 하다가 단상이 떠오르거나 아이들을 통해서 영감을 얻어 글로 표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평소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까지 놓치지 않고 기록으로 남는다.


 다른 사람 글을 통해서 나에게 스며든 감정과 생각이 새롭게 피어날 때 고마움을 느낀다. 감사한 마음은 글에 대한 명확한 출처를 제시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글을 반년이나 쓰고 이제야 느꼈다. 고전이나 베스트셀러에서 다가온 문장은 인용 기록을 남기는데, 더 크고 많은 영향을 준 다른 작가 글은 너무 자연스럽게 도용한 것 같다. 논문을 쓰거나 학술지에 게재하는 글은 출처를 명확하게 명시한다. 하지만, 에세이나 소설에서는 편안하게 가져다 쓴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영감을 건네 준 것까지 모두 글로 표현한다면, 소크라테스부터 공자와 맹자까지  모두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문장 쓰기도 어려울 수 있다.


 분명, 표현하는 게 다르지만 분명 누군가로부터 받은 기운이 남았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해야겠다. 아쉽게도 평소 스스로 생각했다는 글의 많은 부분이 우주에서 창조되어 내 머릿속에서 피어난 게 아니란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영감을 건네 준 사람은 자신의 기운이 상대방에게 온전하게 전달된 것을 알 수 있다. 직접 마주했을 경우에는 영감이 전달되는 순간 상대방 동공이 확장되고 미세한 신경세포가 움직이는 것까지 느낄 수 있다. 마주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의 글에서 나에게서 전해진 기운이 느껴질 때가 있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뿌듯함을 크게 느낀다. 영감을 얻거나 주었을 때 만족도는 매슬로우 욕구 중 최상위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나 존경의 욕구에 속할 수 있다. 최상위 욕구를 충족시켜준 것이라면 감사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밝게 비추는 사람이 되자란 삶의 목표로 살고 있는데, 글을 통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좋은 기운과 영감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좋은 생각과 감정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전달자만 되어도 충분하다. 나 역시 글 소재가 떨어졌을 때 다른 글을 통해서 영감을 얻으면 된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사실 오늘은 미라클 모닝 이백(二百) 일이 되는 날이다. 백일 기념글은 요란하지만 솔직하게 썼다. 글 쓰기 경과와 앞으로의 다짐 그리고 각종 분석까지 망라했는데, 오늘은 글이 무겁다. 자축을 해도 모자랄 판에 근엄한 척 거들먹거리는 글이다. 백일이 지나고 나서 거만과 교만을 얻고 글은 교조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때마침 브런치에서 결산을 해줬는데, 육아 전문 작가로 구분되었다. 발행 취소한 글이 많다 보니 다작은 아니지만 백 편 이상 글을 남겼고, 155일이나 꾸준하게 글을 썼다. 빠르게 지나간 시간 속에서 글솜씨에 과분한 구독자를 얻었고 생각지도 못한 관심을 받았다. 평범하지도 못한 수준의 부족한 글에 응원과 격려로 끌어주는 글벗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이름만 말해도 고개를 끄덕일법한 브런치 작가들과 댓글을 주고받는 것도 자랑스럽다. 앞으로 더 많은 작가들과 소통을 통해서 글을 평범하게라도 살찌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삼백일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는 시점에 다다랐을 때는 좀 더 작가 비슷한 존재가 되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 글은 김소운 작가의 "삽질해도 괜찮아"라고 했다와 인어수인 작가의 여행이 고플 때 솔직한 에세이를 먹었다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1 경기 히든 작가 정희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