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Dec 19. 2021

2021 경기 히든 작가 정희정

며칠 전 그를 처음 봤습니다. 너무 보고 싶었는데, 연이 닿지 않았고 육 개월 동안 알고 지내면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함께 글을 쓰는 다른 사람들은 한 번씩은 봤지만 유독 그만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더 보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부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주절거립니다.


처음 마주한 그의 모습은 작은 핸드폰 세상에서 보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색과 빛을 간직한 채 난로 옆에서 불과 함께 연기처럼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눈에 보였지만 조금 느리게 아는 척했습니다.


그래야 부담 주지 않을 것 같았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좋아하는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다소 긴장한 상태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가 입을 열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저음이면서 다부진 말투는 바로 옆에 앉은 제 소설 스승님을 처음 마주했을 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씩씩한 전교회장 같은 막냇동생이 제 생각을 대신 말합니다.


더 보태고 싶었지만 부담 줄까 봐 감탄만 더했습니다.


한참 대화를 하다가 너의 작업실의 좋은 기운을 받으려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가 이번에 출간한 작품이 제 시선에 들어왔습니다. 브런치에서 다른 작가를 통해 출간 소식을 먼저 들었고, 부끄럽지만 한 권 보내달라고 메일까지 보냈습니다. 다음에 그를 만나면 서프라이즈로 사인받는 퍼포먼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쉽게 회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앞에 멋지게 다가오려고 잠시 숨었나 봅니다.


손을 뻗고 싶었지만 부담 줄까 봐 사진만 찍었습니다.



대화가 끝날 무렵 책을 늦게 발견한 척하며 책방 사장 탱님에게 구매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그를 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당장 사서 사인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3권은 무료라는 말에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의 책을 직접 사고 싶었는데, 무료의 노예가 되어 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용기가 생겼고 터벅터벅 걸어가서 한 권을 가져다 제 자리에 놓았습니다. 마치 속 좁은 사람이 이건 내 거야라며 찜하는 모습으로 비쳤을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과 그를 놓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사인하자며 분위기를 조성했고, 책을 들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저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까지 포함한 사인을 받았습니다. 그 역시 처음 하는 사인이라며 긴장한 듯 손을 떠는 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책 안에 수록된 글은 전에 몇 번 읽었습니다. 서로 글에 대한 생각을 여러 번 나누기도 했습니다. 단지, 그에게 한걸음 다가가기 위해서 어색한 행동이 나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책도 사인도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을 텐데, 저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연속했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가 유명해졌을 때 첫 사인을 받았다고 자랑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그가 유명해지면 좋겠지만 유명해지지 않아도 제가 글쓰기를 시작하고 글을 처음 접하면서, 글에 빠지고 감탄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멋지게 앞에서 걸어가는 모습만 봐도 뿌듯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다가가지 않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건강하게 계속 글을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면서 오염된 제가 그를 아프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아픔에 대해 물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에 대한 제 마음이 동정으로 비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적당한 거리에서 계속 글벗으로 함께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글 친구는 글로만 친해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경기 히든 작가 선정과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이 글은 그가 잠시 쉬는 동안 글 모임 게시판에 올렸는데 몇 명 친구들이 그에게 고자질했습니다. 부담 줄까 봐 걱정했는데, 고맙게도 인스타그램에 답글을 올리면서 저 역시 브런치에 나누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글 동무 글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감성 그리고 늘 저를 감탄하게 만드는 글을 뽐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로 여는 감사한 아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