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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17. 2021

세계 평화 유지를 위. 해.

[뮤지컬 관람후기] 메이사의 노래

 평소와 다름없이 소끌개끌로 아내를 졸졸졸 따라갔다. 함께한 큰딸에게 올림픽 공원 역도경기장을 공연장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해주며 군인의 안내를 따라 표를 구매했다. 구매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고 하여튼 표를 받았다. 잠시 줄 서있는 동안 앞뒤로 아내 지인을 만났는데, 계룡대에서 육군 행사에 참석한 느낌도 잠시 들었다. 그래도 엑소 찬열과 인피니트 엘이 거대하게 인화된 포스터를 보면서 조금은 가슴이 설렜다. 그나마 드레스 코드는 맞춰야 하기 때문에 연 98.5%를 유지하는 트레이닝복 장착률을 크게 떨어뜨리며, 깃이 있는 셔츠에 면바지를 입었다. 그래 봤자 어떤 나라에서는 말 타면서 운동할 때 입는 옷이긴 하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엄기준과 차지연이 배역을 맡아 감동을 전해준 마타하리 이후 만 4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 우연찮게 좋은 기회가 생겼다. 그렇다고 그동안 문화생활을 중단했던 건 아니다. 마타하리를 마지막으로 신비 아파트, 케빈과 엘리 등 심오한 뮤지컬로 장르가 변했을 뿐이다. 다만, 최근 2년간 코로나로 인해서 그마저 볼 수 없게 되었다. 첫째가 뮤지컬을 함께 볼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공식적으로 모시고 갈 수 없는 네 살 둘째를 과감히 버리고 셋이서 조용하게 즐겼다. 미안하다 행복했다.


 공연이 시작 전부터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줄거리는 전혀 모르고, 내돈내산도 아니기에 기대감 역시 낮았다. 큰딸이 BTS를 좋아하니 아이돌만 봐도 좋아할 듯해서 편안하게 시작을 기다렸다. 다만, 음악감독이 김문정 님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마지막으로 관람한 마타하리도 김문정 음악감독이 직접 연출하고 지휘했었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방송을 통해서 좋은 이미지가 많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도 다른 출연자는 전혀 몰랐고 음악감독을 보고 신청했다. 무대 가까운 곳에서 관람하는 엑소와 인피니트 팬이 알았으면 섭섭할 법하다.



 카운터에서 VIP를 모시려고 나온 김 군을 오랜만에 만났다. 레바논에서 함께하고 10년 만에 봤는데, 마흔을 훌쩍 넘기더니 외모에서 세월이 느껴졌다. 인사를 하자 반갑게 맞아줬는데, 바쁜 듯해서 후일을 기약했다. 인터미션에 우연히 VIP도 만났다. 인사드리자 여전히 가볍게 눈인사만 하고 갔다. 갈수록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우리는 그 정도 거리가 적당하다. 더 이상 가까울 필요도 배척할 이유도 없는 사이가 되었다.


 감상 포인트가 크게 달라졌다. 지금껏 뮤지컬을 볼 때마다 음악과 배우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줄거리와 무대 배경에 주목했다. 그리고 음악을 들을 때 멜로디 외에 가사까지 신경 써서 감상했다. 예전에 관람했던 박효신 출연작 팬텀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박효신이 노래를 멋지게 불렀다'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수준이다. 게다가 평소 가사를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이 가사에 신경 썼다는 건 이례적인데,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아내만 놀랄 일이다. 아마도 감상 후에 리뷰를 쓰고 싶다는 의지에 가사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잘 못 들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막이 올라가고 귀청이 떨어질 듯한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공연장이 크지 않다 보니 울림이 좋고 가깝지 않은 좌석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작은 목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린다. 큰딸은 조금 시끄럽다고 하지만 아내와 나는 뮤지컬에 점점 빠져든다. 파병과 오디션 그리고 K-POP이 주된 이야기이다. 아내와 파병에서 이루어진 사이이다 보니 많은 부분이 가슴에 와닿는다. 특히, 파병지역에서 주민 간의 마찰을 보여주고 파병군인과 어색한 관계가 개선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10년 전 레바논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더군다나 레바논에서 추억을 함께했던 아내와 김 군도 같은 공간에 있다. 울음 포인트도 아닌데, 눈물이 계속 난다. 아마도 파병 시절 그리움이 눈물로 변한 것 같다.



 엑소 찬열 군은 티브이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해서 알고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각자 춤과 노래 실력이 출중해서 공연 내내 흥이 나고 감동도 전달받았다. 극 중 심각한 상황을 연출할 때는 무대 배경과 배우의 연기력이 더해지면서 관객을 몰입시켰다. IT기술 발달로 무대 배경도 섬세하면서 화려해졌다. 대형 LED와 배우의 춤과 연기가 자연스럽게 융화되면서 영화 보다도 다이내믹한 느낌을 줬다. 게다가, 수준 높은 음악이 더해지면서 배경이 바뀌고 노래가 끝날 때마다 진심 어린 박수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절정에 다다랐을 때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엑소의 으르렁이다. 음악에 맞춰 배우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찬열 군 표정과 몸짓에서 여유가 느껴지며 여럿 앙상블이 함께하는 군무는 조화롭고 익숙하게 다가왔다.


 이십 년 정도 관련 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전해주는 메시지도 잘 들렸는데, '함께하면 좋은 친구'가 또렷하게 들렸다. 작품 전체에서 전해주는 목소리도 선명하게 다가왔는데, '세계 평화를 위해'와 '총과 칼은 노래와 춤 앞에서 무너지며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말이었다. 가슴이 쓰릴 정도로 아픈 장면도 있었는데, 엘군 오열 연기에 크게 감탄했다. 파병 당위성으로 오역할 수 있으나 실제 파병을 다녀온 사람으로서 크게 공감하며 아프고 힘든 부분에 대해서 잘 만져준 것 같다.


 뮤지컬을 보고 나오면서 8살 큰 딸은 큰 감흥 없이 라만만 멋있다고 했다. 박효신이 생각난다. 내가 예전처럼 뮤지컬을 대할 때 음악으로만 접근했다면 큰딸과 비슷하게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으로 잘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이지나 감독이 총 연출했는데, 화려한 퍼포먼스 안에는 깊은 생각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잘 담겨있다. 불편하게 드러내지 않으며 적절한 표현을 통해 감동을 선사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도 생각난다. 유시진 대위의 오글거리는 대사도 그립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멋진 뮤지컬 한 편을 보게 되어 감명 깊었다. 다만, 좋은 작품에 대한 생각을 나눌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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