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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Jun 24. 2021

좋은 버릇

I0234_ep.29 밤낮이 바뀌면 난 거꾸로 생각해




매일 같은 시간에 키보드를 눌러가며 글을 입력하다가 손 글씨를 쓰려니까 어색하다.

같은 행위를 두 달 정도 하니까 익혀진 행동과 다른 것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노트에 열심히 손 글씨를 계속 적었다는 점이다.

오늘은 습관과 버릇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 좋은 버릇은 아침에 일어나서 글을 쓰는 것이다.





습관과 버릇은 뜻을 같이 한다. 습관은 어떤 행동을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익혀진 행동 방식을 말하고 버릇은 오랫동안 자꾸 반복하여 몸에 익어 버린 행동이다.

하지만 버릇에는 예의를 뜻하는 다른 의미가 있다 보니 두 단어의 쓰임새는 조금 다르다.


'유세영은 거짓말하는 습관이 있다' 보다

'유세이는 거짓말하는 버릇이 있다'가 자연스럽다.

평소 유세이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나만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큰 딸은 좋은 버릇이 많다.

특히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공부를 한다. 옛 교육 방식이 익숙하신 장인어른의 교육법에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특유의 원칙을 지키려는 성향이 확고해서 익혀진 행동방식이다. 걱정되는 건 이제 8살인데 가끔 팍팍해 보일 때가 있다.

비행기모드 사건 때가 피크였다. 주섬주섬 가방 속을 뒤집어서 자신의 폰을 꺼낸 뒤 이륙 직전에 비행기모드로 바꾸는 행동을 보고 잘 컸다는 생각도 들면서 '유도리'도 좀 심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좋은 습관 하나는 '컬렉션'을 잘한다. 소중한 것에 대해 가치를 두고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심성으로 많은 것들을 수집한다.

가방 깊숙한 곳에는 돌멩이, 과자봉투, 칫솔 뚜껑 같은 나름 의미 있는 물건들이 한 가득히 쌓여있다.



얼마 전 아빠 선물이라고 만들어  준 목걸이가 너무 예뻐서 "세영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소중한 것과 닮았네"라고 빈정대니까,

 "내 선물이 쓰레기 같다는 거야!"라는 예상외의 답변을 받았다.

당황스럽고 미안했지만, 가방에 있는 것이 쓰레기라고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 놀랐다.




둘째 딸에게도 좋은 습관이 있다.

쉴 새 없이 떠드는 것은 기본이고 '옛날에 다 해봤다'는 상상 속을 유영하는 버릇이다. 세밀하게 상상한다. 게다가 진정성이 담겨있다. 정말 상상에 빠져서 사는 게 아닐까 걱정되어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 어떻게 알고 씩 웃는다.


한 번은 자신이 옛날에 영어로 말했다면서 헬로만 삼십 번 하면서 알파벳 송을 부른다. 평소 수가 높고 조금 빠르다 보니 네 살에 거짓말이라는 좋은 습관을 익혔다.



그런 것에 비하면 사랑스러운 아내는 참 습관이 없다. 나와 다섯 살이나 차이 나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직업상 내가 한 계급 위지만 그런 건 '강아지나 줘버린다'라고 생각하고 내 위에 군림한다. 아내 앞에서 내 지식은 유세이의 영어실력 정도가 된다. 그래도 큰 결정을 하기 전에는 남편의 의사를 반드시 살핀다. 거기서 가끔 존중과 존경이 보인다.




우리 가족의 버릇과 습관이 큰 문제가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다른 관점으로 보고 이미 익숙해진 행동과 사고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방향을 야간 틀어준다면 억지로 바꾸려거나 고치려 하여 발생하는 기회비용보다 적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하여 버릇이 순수 우리말이라는데 조금 더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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