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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Jun 26. 2021

버리고 간 바나나 껍질

I0234_ep.3 어쩌면 두 딸의 육아일기 #1

둘째 딸 세이는 이해할 수 없는 연속된 일상을 사는 녀석이다. 그 일상을 그대로 기록만 해도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하다. 놓치기 아쉬워서 촬영하고 글로 남기는데, 녀석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곱씹어 보면서 해결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자의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은 차치하고 영문 이름을 SAY라고 지은 것부터 문제다. 자라면서 분명 마음에 안 든다고 바꿀 것도 눈에 훤하다. 지금까지는 SAY 다 보니 쉴 새 없이 떠든다.


"아빠, 뭐해?" // "핸드폰 봐"


"왜?"X 5 // "심심해서"


"왜, 심심해?" X 3 // "그냥 세상 사는 것 좀 보려고"


(무시, 화제 전환)  


"근데, 바나나가 3개 있었는데, 내가 할아버지하고 2개 먹었어." // "넌 왜? 아빠 바나나를 맘대로 먹어?"


(무시, 목적 달성 시도)


"책상 위에 저 바나나(하나 남음) 먹고 싶다"  // "저리 가"


"먹고 싶다 X10" (손을 뻗어 바나나를 움켜쥔다)


"아빠, 메롱~~" (사라진다. 문도 안 닫고..)


이렇게 상황이 종료되면 좋은데, 애교를 떨면서 나타난다.


"아빠 바나나 먹고 있어!" // "왜 내 바나나를 먹냐고?"

(무시, 거실로 사라진다)


문을 닫고 책을 보려고 하니까 1분 뒤에 다시 문이 열린다.


사람은 없고 바나나 껍질만 던지고 간다. 문은 그대로 열어 둔 채로.(내가 문 열어 두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 까지 이용한다)


골통, 진상, 망나니 그냥 떠오르는 단어다.


아동학자나 선생님들은 이런 현상을 아이가 아빠와 놀고 싶어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좀 더 친절하게 아이와의 시간을 많이 가져보시고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천천히 들어봐야 합니다. 공감을 많이 하시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세상을 바라봐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노력해 보세요...라고 하겠지.


난 그냥 아빠만 하고 싶다. 내 말의 10배 이상 전달하는 SAY의 아빠만 하는 것도 충분하다. 세이한테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언니는 없을 것 같다. 할머니 드라마 못 보게 하기, 할아버지 괴롭히기, 언니 공부 못 하게 하기 이 모든 것이 SAY #2의 사랑 표현인 것은 잘 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 녀석만의 사랑법, 조금씩 자라면서 말도 줄어들고 장난도 잦아들 것 같아서 놓치고 싶지 않은 SAY 사랑법을 열심히 수집해야겠다.


괴상망측하며 비현실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보면서 웃고 있는 바보 어른들이 그 소중한 감정을 놓치기 싫어서 육아일기를 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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