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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Jul 17. 2021

아빠의 아빠는 원격교육이 너무 힘들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부모를 잘 만났다. 부모가 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좋아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라서 우리 부부는 주말 육아만 한다. 주변에서는 축복받았다며, 금수저보다 부러워한다. 그러면서 아이들 교육이 잘 될지 걱정을 한다. 난 괜찮다. 

괜찮다            - 손준수 --

'괜찮다'라는 말은
매우 흔하게 쓰이는 말인데도
그 유래가 분명하지 않다.
가설은 여럿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첫째 딸의 학습 조력자는 할아버지다. 명성 있는 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와서 대기업 인사과장 경력까지 있는 소위 가방끈이 긴 사람이라 영어, 수학할 것 없이 꼼꼼하게 지도한다. 학습 교과에 없는 한자와 중국어도 본인이 별도로 가르친다. 등하교는 물론 가방을 싸는 것까지 함께하며, 가끔은 큰딸과 단둘이 외식도 하고 온다. 나보다 지식수준이 높아서 딸은 궁금한 게 있으면 엄마에게 물어보고 다음은 할아버지다. 가끔 나한테도 물어본다.

 할아버지 교육 방식은 내가 '국민학교 때 배운 방식'과 유사해서 조금 걱정되는데, 열정과 성실함에 사랑이 더해져 조금씩 결실이 드러난다. 가끔 요즘 학원 선생님들의 교육 방식이 잘못됐다고 나와 아내에게 일러주거나 부모들이 확인해야 할 사항까지 꼼꼼하게 알려준다. 지난달 내가 담당했던 큰딸 정기 신체검사 때 누락한 치과 진료도 당신께서 누락 여부를 재확인하고 직접 다시 인솔하여 다녀왔다. 난 정말 괜찮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래도 괜찮다.
유래를 잘 몰라도 괜찮다.




 지난주부터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등교일이 줄었고 원격 수업으로 일부 전환되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도 익숙하게 다루는 할아버지는 원격 수업 전환 준비도 완료했다. 수업이 시작하고 잠시 쉬는 시간 컴퓨터 오류가 발생했고, 허겁지겁 고쳐보려 했지만 복구할 수 없었다. 딸은 아내에게 전화를 했고, 할아버지의 당황한 목소리는 딸 목소리에 겹쳐 멀리서 들려왔다. 결국 조치가 늦었고 한 시간 정도 수업 참석을 못했지만, 아내가 선생님과 통화하여 문제없이 잘 해결했으며, 다음 날도 잘 진행했다.  아무도 그때 상황을 알지 못하고, 말하지도 않는다. 단지, 할아버지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 보일 뿐이다. 난 사실 괜찮다.

이 말을 써야 하는 순간에
이 말이 필요한 순간에
잘 쓰기만 하면 그만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터전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딸과 사위, 손녀를 위해서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곳으로 이사했다. 8년 간 8번의 이사를 같이 하면서 지금은 딸을 기러기로 멀리 보내고, 불편한 사위와 손녀들과 함께 산다. 그 와중에 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3년이 지나 완치가 됐다고 하지만,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보다 손녀의 학업에 더 열중한다. 그 시절, 어렵고 힘들게 공부했던 소중한 것들을 끄집어내어 꼼꼼하게 알려준다.

 원격교육이 잘 안 되는 순간 당황하여 해결하지 못한 자책은 없었으면 좋겠다. 아무도 당신을 탓하지 않는다. 지금껏 한 것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노력과 사랑을 큰딸도 잘 안다. 그래서 큰딸은 늘 세상에서 할아버지가 가장 좋다고 말한다. 난 괜찮고 싶다.

'괜찮다'
'괜찮다'




 아빠란 사전에 나와있는 정의처럼 자기를 낳아 준 남자에서 그치면 안 된다. 자녀가 스스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보살피고 조력하며 같이 살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건강해야 한다.

 할아버지는 그런 아빠의 아빠다. 아빠는 다 성장했으니까 할아버지는 자녀의 자녀를 돌보는 것보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 현실이 슬프고, 이 현실 속 나는 괜찮지 않다.

'괜찮음'이 필요한 순간에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된다.



아빠의 아빠             - 혜남세아 -

아빠의 아빠는 물에 비쳐 환하게 반영되길 바라
아빠는 윤슬에 비친 어두운 그림자 만으로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 글 쓰는 중에 얼마 전 접한 시집 '자음과 모음과 마음들 / 손준수'의 시 '괜찮다'가 생각났고, 묘하게 겹쳤다. 오늘 글에 잘 어울릴 것 같아 시행만 나눠서 인용했다. 참고로 시인께서 시집 일러두기에 자신의 시를 몇 장 정도 올리는 것은 권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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