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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May 11. 2022

사 퍼센트의 순간 모든 게 어긋나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온전히 나답게 보낸 시간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순간은 항상 설레지만 과도한 긴장감으로 인해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특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수록 실수는 많아진다. 결국 만남이 끝난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이불이 공중에 머무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다.


오랜만에 글방으로 향했다. 매주 일요일 큰 아이 그림책 수업 인솔을 했지만, 단지 운전자이자 보호자 역할만 했을 뿐이고, 나를 위해 보낸 시간은 가물가물했다.


토요일 오후 여섯 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섰다. 글방 친구들과 함께하는 글쓰기 모임인 만큼 조금 일찍 도착해서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과 소식도 나누고 차분하게 앉아 정돈된 상태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게다가 토요일 저녁 시간에 혼자 나가는 일은 흔하지 않은데, 지난 일 년 동안 단 두 번밖에 없었다. 일 년 오십이 주 중에 단 두 번이면 연 사 퍼센트의 소중한 시간이기에 모든  완벽하고 조화로우며 행복한 날이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어긋났다. 두 딸과 함께 일찍 집을 나와 공원 놀이터에서 거지놀이를 한 게 화근이었다. 약속 시간 사십 분 전 거지 신분을 탈피하자는 선언에 두 딸이 순응 할리 없음을 알면서도 방심했다. 게다가 날이 따듯하고 코로나가 수그러 들면서 공원에 사람이 많아진 도 간과했.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모래성과 변질한 것 같은 뽀로로 케이크를 강제 철거하고 장비 정비와 전장 정리 후 두 딸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똥 같은 진흙을 씻기고 나서 허겁지겁 약속 장소로 향했다. 몸이 무거웠다. 아니 더럽고 찝찝했다. 머리카락 어딘가에는 모래 알갱이가 숨어 있었고 신발과 양말 사이에도 열세 개 정도 남은 느낌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약속 시간이 십분 정도 남은 상황에서 정발산공원 옆길 과속 제한 삼십 킬로미터까지 내 목을 조여왔다.


다시 한번 어긋났다. 다행히 약속 시간 오 분 전에 도착했다. 차하려는 찰나 골목길 삼거리에서 차랑 네대가 혼잡하게 얽힌다. 앞에 보이는 벤츠 주인은 알 것 같고 우리 차와 우리 뒤에 따라온 차 그리고 반대편 다른 한 대까지 서로 어쩔 줄 몰라서 어정쩡한 상황이 이어진다. 운전대는 아내에게 넘겼는데, 친구들과 인사도 해야겠고 교통까지 정리해야 하는 복잡 미묘한 상황이었다. 갑자기 이십 분 전까지 거지였던 딸들이 예쁜 공주님처럼 아빠 친구들한테 인사를 하겠단다. 사실 일 년 만에 만나거나 처음 보어색한 사이인데, 예의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래저래 어정쩡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렇게 소중한 사 퍼센트의 순간이 이어졌다.


한 번 어긋났다. 대부분 아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정신없는 상황에서 인사를 하면서 테이블 가운데 앉았는데, 처음 보는 분 정면에 아무 생각 없이 마주 앉았다. 통상 비슷한 상황에서는 가벼운 목례를 했다. 다만, 정신없었고 주변을 살피지 못한 상태에서 자리를 여기저기 오가며 의자를 빼고 다시 넣고를 반복하는 마임 공연에 집중다. 분에 사 퍼센트를 오롯이 할애하여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작가님을 앞에 두고 우왕좌왕하며 허겁지겁 정신없이 갈팡질팡하는 안하무인이라고 친절하게 나를 소개했다.


네 번째 어긋났다. 각자 한 편씩 쓴 글을 스스로 낭독할 시간이다. 사실 당황했다. 분명 안내 글에 쓰여 있었던 것 같았는데, 주의 깊게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인지 못했다. 당연히 출력물은 가져오지 않았고 휴대전화를 꺼내 미리 보낸 글을 찾았다. 그나마 낭독 순서가 중간쯤이라서 속으로라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작가님께서 직접 출력까지 해온 인쇄물을 건네준다. 부끄러운 마음에 계속 만지작 거렸다. 게다가 분명 펜이 있었는데 가방에서 보이질 않는다. 몇 번 만난 적 있는 진선님한테 빌릴까 고민하다가 말도 못 꺼냈다. 낭독은 시작했고 차분하게 글을 숭님과 디제이님이 어수선할 수 있도록 가방을 서너 번 올렸다가 내렸다를 반복했다. 아침부터 연속해서 수업하느라 피곤한 오늘의 작가님 정면에서 거대한 몸뚱이가 계속 춤을 춘다.


다섯 번째 어긋났다. 한 주전에 보낸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고 여백에 멘트까지 달아주셨다. '정갈하고 깔끔한 글이며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쓰인 글'이라는 말도 안 되는 평을 해주셨다. 아쉽지만 이천자도 안 되는 짧은 글에 어이없는 단어가 들어가서 문장이 이어지지 않는 부분을 뒤늦게 발견했고 결국 낭독 중 버벅 거리는 상황도 있었다. 메일로 보내기 직전에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문장을 바꾸다가 그대로 보냈던 것 같다. 작가님께서 다른 분에게 코칭하는 이야기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전 초고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알몸으로 다른 사람 앞에 서 있는 기분이거든요' 당시 행사에 참여한 인원 중 유일한 와이 염색체 보유자가 홀딱 벗고 리댄스추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어긋났다. '작가님 글이 너무 좋아서 프롤로그만 열 번 읽었습니다'  이게 무슨 방귀 같은 소리인지, 게다가 '책이 좋아서 스무 권도 넘게 구입하여 선물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마치 자신이 재벌 회장님이라도 된 듯 글은 읽지도 않고 책을 사서 뿌렸다는 게 자랑인 것처럼 떠들었다. 아직도 선님의 완벽한 비유가 잊히지 않는다.

'수학 정석 집합공부한 상황' 


덩달아 어긋났다. 함께 글을 쓰는 숭님과 제이님의 좋은 글과 낭독에 집중하고 잠시 쉬는 시간, 두 을 불러 세워 훈수를 둔다. 작가님도 인정하며 출간까지 한 숭님과 요즘 글빨 최고조 디제이님께 '여러분 글은 전에 읽은 느낌이 들어요' 이건 무슨 망언 종합 선물세트도 아니고 뱉는 자음도 실언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더군다나 둘은 심리학자이고 치과의사이며, 육아로 바쁜 시간에도 좋아하는 작가와 글 친구들을 위해 정성껏 써서 낭독한 글인데 면전에서 폄하했다. 그나마 두 분이  망언을 좋아해서 다행이었지만, 진심으로 알보칠 한 통을 들이켜 혀를 마비시키고 싶었다.


정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온전히 나답게 사 퍼센트의 시간을 보냈다. 하루가 지나고 글방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웃음꽃을 피우지만, 오늘 밤 잠들기 전에도 내 이불은 천장에서 내려올 일이 없을 것 같다.





추신.

 '온전히 나답게', '조금 긴 추신을 써야겠습니다', '무리하지 않는 선' 등 저자이신 한수희 작가님과 함께 일산 독립책방 너의 작업실에서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어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조금 읽기 편하도록 상황을 과하게 묘사했습니다. 제 심경은 더 했지만 글벗들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사 퍼센트의 순간이었기 때문에 조금 긴 추신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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