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May 14. 2022

당신이 제 스승입니다

가르침 끝에서 배움에 닿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배우고 익힙니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가르치기도 하지요.  역시 지금껏 살면서 대부분 학생이거나 제자로 습니다. 그러던 중에 몇 해 전 우연히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평소 가르치는 행위를 극도로 싫어하다 보니 엄청난 부담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짧은 기간 가르치면서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부터 글도 씁니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가르치는 행위를 통해서 부족한 자신을 발견했고 선생님이란 자리가 얼마나 숭고하고 소명의식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르치는 임무를 마무리할 때 즈음 배움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정확하게는 배움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겠네요. 좋은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배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삼 년 동안 교관을 하면서 많은 제자가 생겼습니다. 한두 시간짜리 짧은 강의를 한적도 있지만 스물네 시간 밀착해서 육 개월 동안 도제식으로 가르쳤던 경험이 대부분입니다. 당시 인연이 된 제자들이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좋은 소식을 전해줍니다. 다수가 이삼십 대라서 결혼 소식이 가장 많지만 가끔 힘든 일이나 어려운 상황을 전하기도 합니다. 진급을 했거나 못했거나 징계를 받거나 이성과 어지거나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생기거나 배웠던 과목에 대한 궁금증을 시시콜콜 연락하는 것을 보면 천상 제자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르친 것보다 배운 게 많습니다. 제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주변 모두가 스승고 제자란 말처럼 정말 많은 스승이자 제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제가 가끔 멋지고 당당한 모습을 보일 때는 제자들이 존경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이 어려워 지치고 힘든 모습을 비출 경우에부끄럽게 생각하겠지요. 어쩌면 자신이 제자라는 것까지 부끄럽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스승제자가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뿌듯한 게 아닙니다.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이 멋지고 잘나면 자랑스러울 텐데, 그렇다 보면 제자라는 것만으로도 뿌듯할 테고 자연스럽게 좋은 스승이 되겠네요.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좋은 스승과 제자가 되기 위해서 서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지난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런 연유로 제자인 제가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게 더욱 뿌듯하도록 더 멋지며 본받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더 많은 부분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되어주세요. 저 역시도 많은 노력을 하겠습니다. 제가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다면 당신께서는 훌륭한 스승이 되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 서로 욕심 한번 부려보죠.


제가 스승이라고 말하는 당신이 누구냐고요? 잘 모르시겠나요? 당신이라니까요. 이렇게 휘갈겨 쓴 서툰 글을 읽어주는 당신이 제 스승입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한번 증명해 보일게요. 인정한다면 당신은 제 스승이 맞겠죠?


당신은 제가 발행한 글에 잘못된 문장이나 오탈자가 발견되면 개인 톡으로 알려주셨습니다. 당신은 제가 글을 발행하자마자 응원부터 한다며 빠르게 좋아요를 눌러주셨죠. 언젠가는 꼼꼼하게 읽고 공감도 해주셨습니다. 바쁜 날은 읽지는 못하지만  읽어보겠다며 흔적만 남기고 가셨죠. 어떤 날은 여러 번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문장과 내용을 곱씹어 보며 생각과 감정을 나눠준 적도 있잖아요. 그리고 글을 통해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더 좋은 글을 쓰고 감사 표현도 했습니다. 왜 그랬나요? 그냥 심심해서 하셨나요? 돈 보다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서툰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응원하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가르침은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판단하는 게 맞다고 배웠습니다. 아무리 깊은 지식을 조리 있게 설명한다고 해도 배우는 사람에게 스며들지 않는다면 좋은 가르침일까요? 곤욕이고 가끔은 반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행위가 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조금 늦은 나이에 글을 배우고 있는 저에게 당신의 가르침은 글을 쓰는 동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살아내는데 큰 힘이 되었답니다. 무엇을 얼마나 가르쳐야 스승이 되는 걸까요? 사는데 큰 힘을 다는데, 더 큰 이유가 필요합니까?


글을 왜 쓰냐는 질문에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저 역시 다양한 목적에서 글을 쓴다고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살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고 살아내는 것은 혼자서 결심하고 행하는 일이지만 옆에서 같이 걸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스승의 정의는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인데, 당신께서 제가 가는 길을 흐트러지지 않고 꾸준하게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잖아요. 아직도 인정하기 싫으십니까?


혹시 당신이 거부할까 봐 전 더 열심히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당신께서 제가 제자라는 것을 뿌듯할 수 있도록 더 단단해지고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투박하고 비문 투성인 글이 언젠가 좋은 글이 되고 읽기 쉬우며 다시 한번 보고 싶은 글로 승화했을 때 저를 가르치는 당신께서 흡족해하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피식 한번 웃어주는 당신은 제 스승입니다.





추신.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글을 쓰면서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나네요. 어제는 오 년 전 가르치고 배웠던 제자가 카네이션 가득한 꽃바구니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스승과 제자 그리고 가르침과 배움을 생각하던 중에 좋은 기운을 받았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다 돌려보냈거든요. 심지어는 둘째가 태어나는 날 보낸 감사 표현까지도 전부 돌려보냈습니다. 그로인해 관계가 불편해진 경우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관계와 금액인 경우에는 고맙게 받습니다. 대신 상응하는 선물을 톡으로 보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가르친 것보다 배운 게 많은 제자들이 보내 준 카네이션을 여기저기 실컷 자랑하고 감사하며 보답하는 뜻으로 커피 쿠폰을 발송했습니다. 그나저나 저보다 당신께서 받으셔야 할 카네이션인데, 제가 대신 받았으니 사진으로라도 보내드립니다. 늘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스승님! 하트도 좋고 댓글도 좋으니 꼭 흔적 남기고 가세요.


꽃 고르는 센스를 보니 성공하겠구먼... 누구한테 배웠니?




오월 둘째 주 주제 선생님


이전 글 : 결이 같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글

4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승은 없는데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