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아들과 0부터 배우는 엄마
보글보글 글놀이
5월 2주
'스승의 날 특집'
<스승은 없는데 있다>
부제: 초등학생 아들과 0 부터 배우는 엄마
요즘 남편은 옛날 노래를 들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노래들이 공교롭게도 제가 아이가 없던 시절, 자유롭게 흥얼거리던 노래들을 듣고 있어 흘러나오는 곡들에 추억이 묻어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그는 추억의 노래 감상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음악감독으로 현재 활동하고 있는 남편은 예전에 우리가 알던 노래들을 새롭게 편곡하려 들어 보는 중이었던 것이지요.
음악은 그 멜로디 자체에 힘도 있지만 편곡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분위기가 바뀌어 전혀 다른 느낌의 곡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간혹 너무 무리한 변화로 원곡의 아름다움을 훼손시키는 편곡에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게 기존에 당연하다고 느꼈던 곡을 뒤틀어보고 변형시키는 시도마다 우리는 또 놀라게 됩니다. 그 맛에 음악 프로그램을 볼 때 뻔히 아는 노래지만 새로움에 전율하게 되지요.
남편은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음악감독으로 대중에게 소개되기 이전부터 싱어송라이터로 여러 곡을 작곡하고 다른 가수들과 작업을 해오며 편곡, 프로듀서로서 오래 음악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각종 음악 프로그램의 음악감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가수들의 공연도 음반도 위축된 상황에 방송일을 이어가고 있어서 감사한 상황이지요.
이렇게 계속 자신만의 음악의 길을 가고 있는 남편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음악을 가르쳐주신 감사한 스승님이 있어요?”라고 묻자,
“아니. 나는 내가 선생님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오만한 대답이라니? 평소 남편의 과도한 겸손함에 자기 피알을 너무 안 하는 게 속상한 저로서는 그런 식으로 말할 사람이 아닌데 또 농담을 하나 하고 놀라서 쳐다보았더니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나는 미래의 내가 선생님이야.”라는 것이었습니다.
음악 하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가만히 마음을 가라앉혀 스스로에게 해답을 구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곡을 만들어왔던 남편은 자신에게 선생님이 없어도 미래의 자신에게 묻고 일을 해온 것이었습니다. 미래의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알고 현재에 해답을 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허무맹랑한 이야기같지만 저에게는 꽤 진지하게 생각할거리가 되었습니다.
거기다 남편은 또 덧붙였습니다.
“나는 주변 모두가 내 선생님이 되어주었어. 배우고 싶다고 말했더니 다 가르쳐 주더라고.”
어려선 가족이, 커서는 주변의 친구나 군악대 선후배들이 자신의 스승이 되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따로 없었지만 배우고자 눈과 귀가 커진 상태로 온몸으로 흡수하려는 자발적 학생이었던 그는 아무리 어리숙한 친구 선생님이었더라도 누구보다 잘 배웠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방송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남편은 현재 방송 중인 JTBC <뜨거운 씽어즈> 의 보이는 김문정, 최정훈 음악감독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음악감독으로 일하면서 감정을 제대로 담은 연기자의 드라마같은 노래에서도 많이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늘 스승보다 제자가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가르치는 스승보다 잘 배우는 제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문득 '스승'이라고 말할 사람을 택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스승'이라는 말을 학교 같은 한정된 장소에서만 쓰는데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아니어도 가르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자연에게서도 우리는 배움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승은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내 주위 모든 것이 나의 스승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평소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묻고 해답을 구하는 시간을 잘 가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바깥에서 배움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습관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 태도를 살짝 내려놓은 채 자신의 내면에 소리를 들어보려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 알고 있지만 잠시 잊고 있는 자신에게 자꾸만 물어보고 귀 기울여 들어보다 보면 해답이 기억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듣게 된 소리는 미래의 내가 해주는 말과도 같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괜찮고 잘 될 것이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는 미래의 나는 현재의 고민에 쌓인 나에게 현명한 스승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스승은 바로 나이기도 한 것입니다.
나는 나이기에 스승은 따로 없는 것과도 같습니다.
문득 0 이라는 수학 개념이 떠오르는군요. 얼마전 초등학생 아들과 0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책에는 빈 접시 그림과 네모칸이 있었습니다.
"접시에 파인애플이 0/1/2 개 있다."라고 쓰여있었고 없는 파인애플이 몇 개인지 묻습니다.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0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없지 않은 '없는 0'을 존재하게 만들고 0개 '있다'라고 합니다.
스승이란 따로 없다.
스승이 0명 있다.
스승은 있지만 없다.
바로 내 안에 있어 없다.
보이지 않지만 알아차린 존재, 미래의 내가 나의 스승이다.
내 눈에 미래의 내가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 존재하는 미래의 나를 알아차리면 알게 된다.
스승은 없지만 있다.
내 안에 있어서 없지만 있다.
아이와 0 부터, 모든 것의 처음부터 다시 배워가 봅니다. 아이와 함께 배우며 아이에게도 배우기로 마음 먹으니 갑자기 시도 나왔네요.
태어나는 작은 아기들부터 인생의 수많은 경험을 거친 후 눈 감기 직전의 현자까지 우리는 어쩌면 모두의 선생님이고, 인생 속에서 배워가는 학생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고 주변의 모두에게 배우고자 노력한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번 스승의 날 카네이션은 초등학생 아들과 0부터 새로 배우며 내가 나를 깨우치려 노력한 '나 선생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나타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신
삶의 수많은 스승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잘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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