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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y 11. 2022

스승님! 저는 작가입니까?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

보글보글과 함께 하는 글놀이
5월 2주
스승의 날 특집
"선생님"

스승님께.

작은 것이라도, 다만 한 가지라도 깨달음을 주시는 분이 있다면 스승이라고 생각하기에, 책 몇 권 읽었을 뿐이지만 감히 당신을 스승이라 부르려 합니다. "너 같은 제자는 둔 적이 없다!"라고 내치셔도 상관없습니다. 수많은 질문을 받아주시고 생각의 물꼬를 열어놓으셨으니, 저는 그리 여기렵니다.


분명 글쓰기에 대한 책은 아니었는데 제게는 그것만 보이더군요. 머릿속이 '도대체 나는 왜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찬 까닭입니다. 브런치라는 곳에서 글을 쓴다며 깝죽대고 있는 제가, 즐겁게 노닐고자 한 곳에서 번뇌의 시간을 보내는 제가 갑갑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계속 써?
자기 이야기를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냐?
그 사람들을 어떻게 믿어?
거기, 너무 위험해 보여!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친절하면서 나에게는 왜 이렇게 불친절해?

숱한 질문들을 들어가며 계속 쓰는 이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작가'라는 부캐를 아니꼽게 보고 있을, 혹은 '자기네끼리 작가님이라고 부르면서 놀고들 있네'라고 여길지 모를 이들의 시선을 감당하면서까지 왜 남아 있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는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얼마만큼의 간극이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

"나는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에고이스트지.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글을 못 써.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어쩌면 독재자 하고 비슷해.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만인의 글이 되기 때문이라네. 남을 위해 에고이스트로 사는 거지."

그랬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오로지 저를 위해서였습니다. 잘 쓰건 못 쓰건 제 것을 꺼내고 싶었지요. 저만 볼 수 있는 공책에 적지 않고 이곳을 택한 이유는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건져 올린 생각을 보여주고 싶었고 나누고 싶었죠. 욕심도 났습니다.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으며 찬사를 원했습니다. 만인의 글이 되었다는 착각이 즐거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작가입니까?


...

"개미는 있는 것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 개미와 거미는 있는 걸 gathering 하지만, 벌은 화분을 transfer 하는 거야. 그게 창조야. 여기저기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며 매일매일 꿀을 따는 벌! 꿀벌에 문학의 메타포가 있어. 작가는 벌처럼 현실의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발 뻗는 순간 그게 꽃가루인 줄 아는 게 꿀벌이고 곧 작가라네."

"글을 쓸 때 나는 관심, 관찰, 관계.... 평생 이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어왔다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겨."

글을 쓰는 것이 즐거웠던 이유는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던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 건져 올린 의미를 글로 적다 보면 세상은 의미 있는 관계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됩니다. 팍팍하고 답답한 삶은 그대로지만 내 마음은 조금쯤 여유로워지는 것이 좋았습니다. 세상과 나의 관계가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작가입니까?


...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 똑같은 시간을 살아도 이야깃거리가 없는 사람은 산 게 아니야."

삶 곳곳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글감을 찾을 때마다 5천 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작은 행복이 쌓이고는 했습니다. 화수분 같은 내 삶의 이야기를 팔면서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작가입니까?


...

"글 쓰는 사람은 매번 패배한다네. 난 매번 KO패 당했어. 그래서 또 쓴 거지. 완벽해서 이거면 다 됐다, 싶었으면 더 못 썼을 거야. 내가 계속 쓰는 건 계속 실패했기 때문이야. 정말 마음에 드는 기막힌 작품을 썼다면, 머리 싸매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을까 싶어. 글을 쓴다는 것은 앞에 쓴 글에 대한 공허와 실패를 딛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것이야."

"나에게 행복은 완벽한 글 하나를 쓰는 거야.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지. 그러니까 계속 쓰는 것이고.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글은 실패한 글이라네. 지금까지 완성된 성인들 중에 글을 쓴 사람은 없어. 예수님이 글을 썼나? 공자가 글을 썼나? 다 그 제자들이 쓴 거지. 역설적으로 말하면 쓰여진 글은 완성되지 못한 글이야..... 그저 끝없이 쓰는 것이 행복인 동시에 갈증이고 쾌락이고 고통이야. 어찌 보면 고통이 목적이 돼버린 셈이지."

저는, 앞에 쓴 쓰레기들 위에 쓰레기 하나 더 쌓을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뜨면 또 새로운 쓰레기를 찾아 헤매는 넝마주이입니다. 쓰고 싶다는 열망에 설레다가 쓰면서 갈등하고 다 쓰고 나면 쾌감을 느꼈다가 다시 공허해집니다. 마음에 안 드는 글 한편을 내놓고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다가 다시 설레고 갈등하고 쾌락을 느끼고 공허해지기를 반복합니다. 고통스러운 사이클에 갇혀있는 저는, 작가입니까?


시대의 지성이라 불 당신, 숱한 작품을 통해 길이 남을 스승님. 당신의 책을 읽고 감히 제가 '나는 작가인가'를 논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디지털 속 작은 방 하나 꾸려놓고 끄적거리고 있으면서 대작가라도 된 것처럼 고민하는 것이 우습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소박한 글놀이 하나에 온갖 번뇌와 시련이 들끓는 것이 신기하여 질문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제가, 작가입니까?


'고난 내 그릇의 넓이와 깊이를 재는 저울'이라는 책 속 한 문장을 부여잡고 저를 측정하기 위해,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쓰기로 합니다. 작가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한가, 까닭 모른 채 만신창이가 된들 어떠한가. 쓰는 고통을 쾌락이라 여기며 나만 아는 럭셔리한 삶에 흠뻑 빠져 사는 것이, 잘못일까.

책을 통해 나눈 대화로 저는 다시 한 걸음 내딛을 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제 스승이 맞습니다.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받지는 못했다는,  

5~6백 명 강의실 좌석은 꽉 찼지만 스승의 날 한 송이의 카네이션 받아보지 못했다는 스승님께...

카네이션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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