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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Jul 02. 2022

군 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천사

'응급실 갈 정도로 많이 아팠구나!'


누군가 응급실에 다녀오면 막연히 떠오르는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통상 응급실은 가는 것보다 실려간다는 말이 잘 어울린다.


하지만, 고통 정도를 구분것은 쉽지 않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고통 순위를 구분정량화시키지만 칼로 베인 통증이나 치통 같은 증상일정한 범주로 비슷거나 수치로 나타내는 게 맞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고통을 특정 기준으로 짐작하는 것도 . 차라리 과거에 아팠던 경험을 기준으로 새롭게 느낀 고통 비교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것마저도 환경과 몸 상태가 매번 다르기 때문에 정량화하는 게 수월하지 않다.


평소 통증에 대한 민감도가 예민한 편인데, 아내와 딸들은 엄살 부린다고 구박한다. 조금만 더 아프면 실신할 것 같거나 병원 진료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고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상황에서 응급실을   . 그렇다고 일반병원 응급실을 찾아간 것은 아니고 병원이나 부대 응급실을 방문했다. 이십  복무하면서  번 갔는데, 려간 적은 없었전부 두발로 걸어갔다.


응급실을 스스로 걸어가는 것은 께름칙하다. 죄를 짓는 느낌마저 든다. 평소 의학 영화나 드라마 영향으로 응급실은 혈흔이 난자하며 심폐소생술이 수시로 일어나는 장소라고 각인되어있다. 실제로도 생사를 다투는 상황이 발생한다. 급박한 상황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로 아프지도 않은데 응급실을 찾을 경우 다른 심각한 환자 치료에 영향을 주거나 환자를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 피로 가중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게다가 응급실 간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 다른 사람들이 걱정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주변에 야간까지 진료하는 병원이 없고, 약국마저도 보기 힘든 상황에서 유일하게 밝게 빛나는 곳이 군 병원 응급실이기에 의지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았다. 대한 지 팔 년 정도 지났을 때 처음으로 응급실에 갔다. 혹한 날씨 빙판길에서 시내버스가 미끄러지면서 내가 탄 지프와 정면충돌했다. 프는 중파 했지만 통증이 거의 없어서 별도로 치료받지 않고 귀가했다가 늦은 밤 숨이 막힐 듯한 가슴통증이 찾아와서 가까운 부대 응급실에 간 것이 첫 경험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다시 찾을 일이 없었다.


 년 전 신혼 초기, 아내가 포천 일동에서 근무할 때 다시 한번 방문했다. 아내가 당시 심각했던 신종플루걸려서 사십도 이상 고열과 발작 증상 보였다. 응급실이 있는 병원까지 나가려면 한 시간 정도 걸렸는데, 군 병원 응급실로 가면 조치할 수 있다는 아내 말을 듣고 까운 군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타미플루를 처방받고 각종 정밀 검사 후 안정을 찾았으며, 다음날 퇴원할 수 있었다.  후로 기절하거나 실려가지 않더라도 진료가 제한되는 상황이면 군 병원 응급실을 찾아도 된다는 인식이 형성되었다.


두 딸의 부모가 된 다음에는 일반병원 응급실 문턱도 조금 낮아졌다. 늦은 시간 아이들이 아픈 상황에 자연스럽게 찾았다. 고양, 분당, 서울에서 근무할 때는 가까운 3차 병원 응급실을 여러 차례 이용했다. 첫째가 커튼에 매달렸다가 떨어져서 머리를 다치고 구토를 했을 때, 또 첫째가 젓가락으로 센트를 후벼서 감전당했을 때, 첫째만 있던 시절 셋이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찾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반병원 응급실도 상황이 생기면 갈 수 있는 장소라 인식전환했다.


최근에도 군 병원 응급실에 다녀온 적이 있다. 점심식사 후 급격하게 찾아온 위경련 때문이었다. 몇 주전부터 위염 증세가 져서 다음 날 민간병원 위내시경 검사 예약까지 한 상황이었다. 가슴통증도 자주 찾아와서 건강에 대한 염려도 컸다. 저녁식사를 못할 것 같은 상태에서 정신없이 속에 있던 모든 것을 입 밖으로 쏟아냈다. 살면서 가장 아팠던 고통을 10으로 본다면 8 또는 9 수준의 고통이 몰려왔으며, 곧 쇼크가 올 것 같았다.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주무과장에게만 상태를 알리고 혼자 차를 운전하여 오분 거리에 있는 군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신원을 증명하고 증상을 말하며 체온을 잰 다음 안내를 받아 침대에 누웠다. 1분이 지나지 아서 군의관이 나타났다. 차분하게 증상을 확인한 다음 위경련일 수도 있지만 통증 부위가 조금 다르다며, 심전도 검사를 권유했다. 심전도 검사를 확인하던 중 이상 징후를 느꼈는지 흉통에 대한 질문을 복잡하고 다양하게 물었다. 답변을 어려워하니까 쉽게 표현을 바꿔가며 설명했다. 이어서 간호장교가 혈액검사를 위해 피를 뽑았고, 다시 군의관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다. 검사 결과는 한 시간 정도 소요되니 엑스레이와 CT촬영까지 권유했다.


솔직히 위경련은 진통제를 맞으면 괜찮아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심전도 검사 후 가슴과 복부 부근을 누를 때 통증을 호소한 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다른 질병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대기하는 인원도 없으니 천천히 검사를 받고 가도록 다시 권유하여 동의 후 각종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받으며 응급실을 둘러보니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용사도 한 명 있었다. 친절한 군의관 용사에게 다가가더니 나와 비슷한 절차 친절하게 증상을 물어보며 진료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유연석 님이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물어보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전혀 유연석 님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목소리마저 똑같이 들렸다.


처음에는 나에 대한 친절을 조금은 의심했다. 혹시나 오래 살았다고 조금 더 대우해주는 게 아닌 생각지만, 용사를 대하는 군의관과 간호장교 모습을 보면서 평소부터 배어있는 모습임신할 수 있었다. 진통제와 수액을 맞으며 각종 검사를 받고 나니까 증상이 호전되었다. 결과가 나오자 각종 검사 결과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과 함께 다음 날 내시경 결과에 따라 이상 유무를 종합하여 따져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건네다. CT촬영 결과 이상소견은 없지만 애매한 부분이 보여서 다음 날 다른 군의관에게 관련 내용을 문의하알려주겠다고 전했으며, 위경련을 완화시킬 수 있는 약 처방까지 받았다.


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 누웠는데, 진통제와 수액으로 괜찮아진 게 아니라 군의관과 간호장교의 따듯한 마음 덕분에 통증이 사그라든 것 같았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서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사십 대 중반에 흉통을 호소하니까 걱정을 테고, 평소에 친절이 배어 있는 사람 같다며 병원장이나 관련 인원에게 꼭 이야기해주라고 귀띔해줬다.


다음 날 아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왔다. 어제 진료한 군의관인데, CT촬영 결과를 다른 전문의에게 문의했고, 약간의 이상 징후가 식별되었다며 내시경 검사 결과 특이사항이 있거나 통증이 재발할 경우 바로 응급실로 오도록 안내받았다. 감동받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 쌓인 상태로 민간병원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갔다.


내시경 검사를 위해서 찾은 병원은 깔끔하게 신축된 미술관 같은 병원이었다.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활한 교통정리가 되지 않아서 뒤늦게 병원에 도착하고 당일 내원하신 서너 분이 먼저 진료를 받았다. 요즘 인기가 하늘을 치솟는 배우 박진주의 따끔을 코스프레하는 분에게 피를 드리며 시작했다. 매니저분께서 옷을 벗으시고 가운을 입고 나오라는 친절한 설명을 듣고 나서 속옷에 가운을 입고 나왔더니 대장내시경도 아닌데, 왜 바지까지 벗냐고 이상한 눈빛을 주셨다. 다시 옷을 입고 가운을 입은 다음 이삼십 분 설명 없이 대기하다가 직접 차례를 문의하니 지금 들어가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싸늘한 병원 침대에 옆으로 누워서 입술에 개구기를 문상태로 다시 삼십 분간 명상이 이어졌다. 눈앞에 놓인 프로포풀 주사기를 보면서 당장 직접 주사를 고 잠들고 싶었지만 병원 측에서 제공해준 명상시간에 집중했다.


우여곡절 끝에 검사를 마무리했고, 친절하지만 환자는 세워두고 자신은 앉은 상태에서 기계처럼 말씀하시는 전문의께서 깔끔하다는 감사한 사음절을 전해줬다. 하지만 진료실을 나가기 직전 작년에도 왔었다는 말을 하니까 다시 한번 기록을 보면서 역류성 식도염 증세가 조금 있는데, 약을 처방해주냐고 물었다. 어제 군 병원에서 받았다고 두 번째 답변하니까 바쁘신 와중에도 가시라며 친절하게 노룩 인사까지 해주셨다.


차분한 진료와 검사 덕분에 주차 시간이 세 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수납 카운터에 진료 및 검사비 13만 원을 내고 실손보험처리를 위한 진료 영수증을 받았다. 그나마 카운터에 계신 분께서 두 시간 이상 주차권을 줄 수 없지만 별도로 챙겨준다면 삼십 분짜리 하나를 더 내민다. 전날부터 굶었고 어차피 점심시간이 지나서 배도 많이 고픈 상황이었기 때문에 건물 내 식당에서 식사하고 주차 할인권을 받으면 되니까 어색하게 웃으며 병원을 나왔다.


어색한 웃음은 몇 초 지나지 않아서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핸드폰 알람이 울렸고, 액정에는 전날 만났던 천사에게서 따뜻한 편지 한 통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 표지 : 언제 찍었는지 모르는 누워서 찍은 내 무릎 사진


이번 주 : 응급실

다음 주 : 첫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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