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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Jul 02. 2022

응급실에서 지새운 밤



다음날이 이사였다. 정리를 마치고 귀중품을 챙겨서 세 살, 다섯 살의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향했다. 다음날 새벽부터 시작되는 이사이기에 남편은 남아있고 우리는 친정에서 바로 이사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아이들을 태워 친정으로 향하는 길은 몸과 마음을 노곤하게 만든다. 어쩐지 지금부터 느슨해져도 될 것 같은 넉넉한 마음, 일단 도착만 하면 할머니가 있다! 운전대를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친정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할머니 집 정원에서 한참을 놀고 저녁도 든든히 먹었다. 불현듯 전조증상 없이 둘째가 간간히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은 기침 전에 콧물이다. 콧물이 목 뒤로 넘어가며 기침이 시작되는 경우가 잦다.) 콧물이 나지도 않고 감기 기운도 없었는데 그야말로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겨울이었다. 온도, 습도가 집과 달라서 인 걸까. 아이가 기침을 하니 할머니는 집안 온도를 드높였고 방은 절절 끓었다. 가습기를 켜고 아이를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캄캄하고 고요한 밤, 아이의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일반적인 기침에서 소리가 변했다. 울리듯이 큰 소리, 컹컹대는 기침, 고르게 숨을 쉬지 못하고 컥컥 대는 숨소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후두염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징조가 없었으니 급성일 수 있겠다. 다음날 아침에 병원에 갈 요량으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등을 두드려주지만 아이는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점점 숨을 가빠하며 더욱 큰 데시벨로 컥컥 기침을 해댔다. 힘겨워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가빠왔다.


응급실로 간다.


돌이켜보면 밤을 새우고 다음날에 병원을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육아 내공도, 멘탈도 약했던 엄마 사람이었다. 아이가 아프면 차곡차곡 정리를 해두었던 머릿속의 방들이 깜깜해진다. 차분히 생각의 방을 켜고 행하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머릿속이 캄캄해지고 아이에 온 신경이 집중되면 알았던 것도 의심스러워지게 마련이다. 만일 내가 틀리면 어떡하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엄마를 놓아주질 않는다. 근처에 신뢰할만한 병원이 있다면, 내 아이를 잘 살피고 적합한 약을 처방해주셨던 의사 선생님이 있다면 훨씬 낫다. 그래서 엄마들은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면 가장 먼저 병원과 학원을 검색하고 파악하기에 바쁘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빠른 진료와 처치, 친절한 말투를 기대한 건 아니다. 누가 응급실에서 그런 따뜻함을 바라랴. 다만 작은 아이에게 너무 차갑지만 않길 바랐다. 숨을 고루 쉴 수 있도록 호흡기 치료라도 하며 기다릴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어느 직원분에게 말씀드렸다. 응급실 데스크에 앉아 환자의 순서를 말해주고 의사와 매개역할을 하며 컴퓨터 화면에 기록을 남기는 그분은 업무복을 보았을 때 남자간호사 이신 듯했다. 아님 데스크에 근무하는 직원이셨을지도 모르겠다.


"오래 기다려야 하나요?

"부를 때까지 기다리세요."

"네."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아이가 꺽꺽 거리며 쉰소리를 내자 나는 울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울듯한 표정으로 아이가 너무 숨이 가빠하니 호흡기 치료만이라도 먼저 하게 해 달라고, 진료 전에 해열 주사는 안 되는 건 알겠으니 호흡기 치료 만이라도 허락해달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돌아온 답은 표정만큼이나 매몰차고 높낮이가 없었다. 응급실의 생리를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아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무심함이 서러웠다.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며 차례를 기다리다 결국 새벽이 왔고, 우리는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아이는 해열 주사를 맞고 호흡기 치료를 받았다. 


긴긴밤이 지나갔다. 눈꺼풀이 뻑뻑하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택시를 불러 집으로 가야 하고, 오전에는 아동병원에 예약접수를 해야 한다. 어슴푸레 새초롬한 빛들이 퍼져나가고 콧속 가득 들어오는 아침의 냄새를 들이키며 다시금 마음을 추스른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힐끔힐끔 백미러로 우리를 쳐다보던 기사님이 말을 붙이신다. 안쓰러운 마음을 담아 격려도 해주시고 아재 개그도 던지시며 응급실에서 찌들었던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 마음을 짐작하여 밤새 마른 입술에 힘을 주어가며 애써 웃었다. 어쩐지 웃으니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남편은 사정을 알게 되었다. 전화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음날이 이사니까  깨우지 않았다고 말하고 넘겼지만, 이사가 아니었어도 굳이 전화해서 깨우지 않았을 것 같다. 같이 갔다면 큰 힘이 되었을 테지만 다음날 둘 다 피로했을 테고 더 큰 이유는 남편이 있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의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약해지고, 기대고 싶어지면 불안함이 더욱 커지기에 그냥 혼자서 응급실에 갔다. 징징거리지 않고 울지 않고 걱정을 나누기 싫어서 홀로 지새운 그날 밤은 살아온 겨울의 밤중 가장 추웠으며 뜨거웠다. 


엄마는 강하다고 하지만 약하다. 엄마이기에 책임져야 할 것이 늘어나며 두려운 순간들이 많아진다.  엄마는 강한 게 아니라 버티는 근성이 생기는 거다. 약한 마음을 다잡고 버티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흘러가 있다. 지나 보내고 나면 면역이 생기고 모든 감정의 골이 저마다 길을 만들어 유연해진다. 유연함은 수용범위가 넓다. 


[이석원 에세이]에서 어릴 적의 행복이 기쁨과 설렘, 재미 같은 것들이었다면 어른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는 감사함과 안도감이라는 문장을 읽고 깊이 공감한 기억이 있다. 


가만히 덮어둔 고된 기억들을 펼치고 쓰다보면 시간의 결이 순해짐을 느낀다. 쓰면서 감사하고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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