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상황을 목도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열정과 용기가 충만했던 시절에 다가 온 두려움은 다짐과 인내로 누그러뜨렸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담대함으로 극복했다. 하지만, 이제는 얽히고설킨 관계로 잃을게 많다는 우려가 앞서며 모든 상황 앞에서 머뭇거린다. 다른 사람 눈에 비친 주저하는 모습을 생각하니까 가슴이 쓰리고 초라해진다.
하루도 아찔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DMZ에서 대전차 지뢰가 폭발하여 흙먼지가 자욱하게 눈앞을 가린 채 누군가 의무병을 목놓아 부르는 상황에서도, 잘못 조준하여 주변에서 폭발한 유탄으로 고막이 터질 듯해도, 의식과 맥박 없이 누워서 사경을 헤매는 전우가 눈앞에서 죽어가도, 뺑소니에 치인 행인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도, 정신이 아득하고 조금 어지러울 순 없었다.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주변을 살피며 적합하게 조치해야 부수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고 여려진 마음은 대수롭지 않은 일조차도 심장이 빨리 뛰고 눈앞이 하얘지며 이마에 식은땀마저 송골송골 맺힌다. 분명 생사가 걸린 일도 아니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땅속에 머리를 처박고 싶은 마음뿐이다. 평범한 보고서를 결재받는 중에 오탈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에도, 수업 중 답변이 난처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잘못이 들통나 궁지에 몰렸을 때도 정신이 아득하고 조금 어지러워진다. 심지어는 손발이 저리고 발음이 새며 등골까지 오싹한다.그렇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무엇이 이토록 초라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할까? 새로운 다짐과 더한 인내가 필요한 걸까? 마땅히 답을 할 수 없는 질문만 쌓인 채 소신과 대범이 사라진 삶의 중간쯤에서 잠을 이루지 못해 술에 기댄다.
* 아찔한 순간이 없었다는 결론을 쓰기 위해서 글 뒷부분을 여러 번 바꿔서 썼지만, 결국 다 지웠습니다. 평소보다 발행 시간도 뒤로 미루고 다시 썼지만 만족스럽지 않네요. 지금껏 잘 쓰진 않았지만 스스로 이 정도면 발행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발행했는데, 오늘은 아닙니다. 그래서, 발행 버튼 누르는 순간 아찔합니다. 글을 쓰면서도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