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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Oct 28. 2022

아이가 화상을 입는 순간

아찔한 순간은 다행스러운 순간이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엄마는 수차례 '아찔한 순간'을 맞는다.

엄마가 되기 전 나는 성인으로서 별 탈 없이 내 몸을 잘 움직이고 살아왔다. 스노보드를 타며 속도를 즐기기도 했고, 만세하고 롤러코스터 타는 객기를 부렸던 청년기도 있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나 스스로를 알고 나를 조절하는 능력은 한층 더 향상되어있었다. 그러자 나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자기 몸 정도는 충분히 움직일 줄 아니 이제 아이가 그렇게 자랄 수 있게 돌보는 엄마로 사는 임무였다. 수많은 '아찔한 순간'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을 수 있는 엄마라는 역할이 주어지게 되었다.


주변 친구들보다 늦게 첫 아이를 낳았지만 스스로 나를 위로하곤 했었다. 너무 어릴 때 엄마가 되기보다 나이 들어 엄마가 된다면 더 능숙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별것 없더라도 이러저러한 경험이 있는 엄마는 아이의 육아에도 노련함을 더해 줄 것 같았다. 남들의 실수를 잘 알고 나면 나는 쉽게 피할 수 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몇 번을 탈수있든, 귀로 들은 육아지식이 박사급이든, 머리로 아는 것과 진짜 육아는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투명한 존재를 팔에 안고 살게 되면서부터는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아니 잠을 자는 순간에도 벌떡 일어나 그 존재의 안위를 더듬게 되었다. 별일 없이 잠을 자는 아이를 확인하고서 이미 다 쪼개진 조각 잠을 붙여보는 밤은 엄마들의 흔한 풍경이었다.


감사하게도 시간이 흘러 나의 손이 많이 가는 유아기를 넘겼다. 남매는 초4 초2가 되어 이제 많은 것을 혼자서도 해내고 있는 중이다. 위험한 일은 조심하는 편이고 안내된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어 둘째가 아들이지만 큰 사고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꼭 '아찔한 순간'은 그런 평온한 순간에 온다.

긴장을 놓고 살짝 늘어져있는 상태에 아찔! 하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고통을 일으켜 숨이 멎을 듯한 순간은 거짓말처럼 손쓸새 없이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얼마 전 우리 가족은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3주간 느린 여행을 했었다. 긴 기간 여유로운 여행이라 남편과 나는 아이들의 컨디션에 따라 움직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 위주로 다녔지만, 그중 엄마 아빠 아이들 모두 기대하던 장소로 간 어느 날이었다.


사실 평화롭던 여행지에서 '아찔한 순간'에 대해서는 결코 한마디 쓸 것이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놀랄 만큼 뜨겁게 아찔한 순간을 맞고야 말았다.


뜨겁고 아찔한 곳, 그곳은 온천이었다.

그날은 치앙마이의 산캄팽 온천에 갔던 날이었다.


 

계란을 바구니에 걸어두고 15분 뒤에 맛있게 반숙란을 먹을 때까지 우리는 뜨끈한 가족탕에서 우리끼리만의 온천욕만 기대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찜질방 가는 것을 좋아하던 우리 가족은 계란이 익던 잠시 몇 분도 참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들어간 가족탕.

눈 깜짝할 사이였다. 분명히 뜨거운 물 틀고 있으니 찬물 수도 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라고 했었다. 분명히 알아듣게 설명했었고 조심조심 걸어 들어오며 목욕을 기대하는 아들의 얼굴을 보았었다. 나는 찬물과 뜨거운 온천물이 섞이는 동안 뜨거운 수도 쪽 물에 몸을 담그고 찬물과 섞어 적당한 온도가 될 수 있게 팔로 물을 섞고 있었다.


사진출처 픽사 베이


찬물 쪽으로 들어오던 아들은 생각보다 물이 뜨겁지 않아 긴장했던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물이 나오는 수도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와 찬물에 발을 갖다 댔다. 그러더니 "별로 안 뜨겁네~" 하며 물살을 발로 차 댔다. 그 순간 뭐라고 말할 사이없이 아이는 그 옆에 쏟아지는 물줄기에 축구하듯 발을 쭉 내밀었다. 찬물 옆 수도는 펄펄 김을 내며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온천수였다.


아들의 "악!" 하는 소리와 동시에 내 비명소리가 탕이 찢어질 듯 울렸고 온 가족이 깜짝 놀랐다.

얼른 아이를 안고 발을 찬물에 바로 갖다 대고 열을 식혔다. 뜨거워서 놀란 아이는 고함치는 내 목소리에 더 놀랐고 탕에서 약간 떨어져 있던 아빠도 놀랐다.


좀 전에 계란을 익혀먹었던 그 뜨거운 물에 아들의 발이 익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믿을 수가 없었고 이미 일어난 일을 가지고 아이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는 것도 필요 없는 일이었는데 나는 처음에 애를 안고 뭐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다. 놀란 아이보다 내가 더 새가슴이 되었다. 그 아이를 안고 있는 내 심장이 두배로 세게 뛰었다.


물속에서 아이를 품에 안고 다리를 들어 올려 찬물에 갖다 대었다. 한참 열을 식히는 동안 탕 안은 물소리 외에 조용했다. 나는 자책하고 누군가의 탓을 하려던 습관적인 내 마음을 식혔다. 기대했던 온천욕이었는데 사고가 나버린 일이 누군가의 탓이 아니라고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마음을 식혔다. 아찔한 순간이 있었지만 곧 나을 거라고 호흡을 했다. 물소리를 듣고 아이의 상태를 보아가며 시간이 지났다. 탕의 물은 더운 기운은 없어지고 점점 미지근한 물이 되고 있었다. 우리는 최대한 말을 아꼈고 자책의 말도 서로의 탓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내일 아침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나을 거라고 했다. 오늘 약 바르고 잘 자자고 아이를 달랬다. 그 말이 나의 마음도 달래주었다.


남편은 아이 발의 화기가 내리고 난 후 업고 나갔고 첫째와 나는 미지근한 물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물속에서 내 팔을 바라보았다.




내 오른쪽 팔꿈치에는 500원짜리보다 조금 더 큰 새 모양 흉터가 있다. 아주 어릴 때 뜨거운 솥에 팔꿈치가 들어가 화상을 입었다. 나는 새 모양으로 팔꿈치 안쪽에 하얗게 올라온 흉터를 볼 때 새가슴이 된 엄마가 떠올랐다. 나를 업고 병원으로 뛰던 순간 들었던 쿵쾅이던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흉터를 볼 때마다 가슴 아파하는 엄마 얼굴에 나는 한 번도 내 상처를 엄마의 탓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부디 나의 아이는 화상의 흔적이 없기를 바랐다. 옛날 부엌처럼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손에 닿을 수 있는 아궁이 같은 것이 없어 다행이었다. 위험요소 천지인 유아기가 지나서 안심했다. 온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축구를 하는 아이라 많이 컸다고 좋아하기만 했다. 여전히 아이란 것을, 가장 사고가 많을 초등 저학년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었다.


아찔한 사고가 발생하면 그 후에 자책과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아찔한 순간' 은 '다행인 순간'이다. 아찔한 것으로만 끝났을 때 그렇게 상황이 나쁘지 않을 때만 우리가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이의 발은 아찔한 순간이 아주 짧았다. 아빠가 업고 나와서 온천에 비치된 비상약을 발랐다. 숙소에 와서는 주인 할머니가 주신 약도 발랐다.

다음날 아침 여린 발가락에 붉은 기운 하나 없는 것을 확인하고 감사함에 발을 꼭 감싸 쥐었다. 아파했던 그날 한참 안아주었더니 아들이 살짝 어릴 때로 돌아간 듯했다. 어리광도 더 많이 나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양이 민트가 있는 우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처음으로 집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했다. 여행 2주째를 지나고 있던 중이었다. 우린 곧 돌아갈 것이었다.


고통을 겪고 더 조심할걸 하는 후회를 하고,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며 아이도 나도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더 안전한 곳을 찾고 싶어 했다. 모험을 관두고 다시 안전지대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성장이라는 것은 그런 걸까?

삶이라는 길은 이런 모양의 길일까?

잊었던 고통을 겪는 순간

다시 어려지거나 나약해져 버리고,

기다렸던 여행을 떠나도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지그재그 모양 말이다.


삶의 고비마다 아찔한 순간의 꼭짓점에서 다시 평화로운 아래로 떨어져도 또다시 진땀 나는 위기의 순간도 올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나는 아이에게 사고가 없기를 바란다. 하지만 혹시라도 상처가 난다면 나의 새 모양 흉터처럼 잘 아물기를 바란다.

비록 흉터지만 그 속에 가족의 보호와 사랑받은 기억도 함께 있는 새나 나비 모양으로 남겨지기를..

'아찔한 순간'이 오히려 뜨거운 사랑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타투처럼 남겨지기를..




보글보글 글놀이
10월 4주
"아찔한 순간"


*매거진의 이전 글, 아르웬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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