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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05. 2022

스마트폰 덕질을 벗어나는 방법

보글보글 주제 '덕질'

21세기 들어 세상을 뒤흔드는 대변혁을 두 번 경험했는데,  번 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체감했다. 지하철에는 삼 년 전 찾아온 코로나 19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하얀 천으로 얼굴 반을 가린 채 가득했다. 인류 옷을 벗고 다니는 게 부끄럽다고 인식하며 옷을 걸치기 시작한 원시시대 이후 처음으로 더 걸쳤다. 자세히 보니까 하얀 천으로 얼굴 반을 가린 사람들 대부분 목이 꺾인 채 눈으로만 웃었다. 손에 하나씩 든 바보상자 덕분인, 목이 꺾인 사람이나 바보 상자에서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코로나 창궐 십 년 전부터 우리 앞에 등장한 스마트폰 덕분에 직립하면서 꼿꼿해진 인류가 목이 꺾인 상태로 눈으로만 웃으며 굳어갔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코로나가 잔재하는 오늘 지하철에는 흰색 천으로 차가운 웃음을 숨긴 조커가 득실거렸.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는 공간에서 일했다. 그러다 보니 카카오톡이나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일도 거의 없었다. 통화나 문자를 제때 주고받을 수도 없었. 야근 후 늦게 퇴근하면서 지인과 연락을 꾸준히 이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얽히고설키는 게 싫어서 연락처수시로 폭파했다. 오랜 시간 동안 안부도 묻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났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게 자연스러워질 때 즈음 직책이 바뀌고 다시 사용했는데, 어느덧 년이 지났다.


스마트폰을 일 년 넘게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일할 때 소통 수단이기도 하며 잠시 쉬면서 뉴스를 보거나 짧은 글을 읽을 때도 활용한다. 취미로 글을 쓰는 도구이며, 음악도 듣고 금융거래도 한다. 스마트폰을 놓는 시간은 잠을 자거나 씻을 때 그리고 회의를 하거나 식사할 때 정도이다. 그래서 가끔은 의도적으로 놓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면 또 불안하다. 중독이다. 최근 중독에 가까운 현실을 인식하고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형성된 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스마트폰을 대체할 만한 존재를 고민했다. 순간 떠오른 게 사람과 책 그리고 새로운 덕질이었다. 우선, 사람을 만나면 스마트폰을 조금 멀리 한다. 상대방에게 집중하지 않고 스마트폰에 의지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급한 소식이 오거나 연락을 해야 할 경우 양해를 구하고 사용하지만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결국, 사람을 만나는 게 이다.


다음은 독서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유롭게 독서를 할 때 스마트폰 존재감이 사라진다. 독서 중에도 여전히 음악을 듣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연락이 올 경우 사용하지만 책에 집중하면 내 눈과 손은 스마트폰에게 구속당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귀만 사용하기 때문에 바보상자로부터 벗어난다고 본다. 평소에 독서와 글쓰기를 한 묶음으로 보기 때문에 구분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독서보다 스마트폰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가끔 연필을 꼭 쥐고 쓰지만 대부분 스마트폰에다 기록한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게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집에서는 랩탑을 이용해야겠다고 다짐만 한다. 새롭게 시작한 필사도 좋은데, 필사 대상을 보려면 어쩔 수 없이 또 스마트폰을 꺼내야 한다.


이제 남은 건 새로운 덕질이다. 덕질은 누구나 가슴속에 담은 심미안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내가 가진 심미안은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한 분야에 깊게 빠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요즘은 덕질 현장 중심에 서있다. 오롯이 공급책일 뿐이며, 내 의지는 전혀 스며들지 않은 행위이다. 영문도 모르는 채 알쏭달쏭 캐치 티니핑 장난감과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나 마테(마스킹 테이프)사서 나른다. 장난감 코너에 재고가 없으면 판매자에게 재고 수량과 재보급 일자를 물어보기도 한다. 하루 종일 티니핑 노래를 들으직접 그린 천사핑 그림 여러 장을 감상하고 열심히 꾸며진 다이어리를 보면서 영혼이 실린 듯 한 리엑션을 한다. 물론 내 심미안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심미안이 몇 번 작동할 뻔했다. 운동을 좋아했다. 하지만 적당히 하다가 그만뒀다. 종목별로 다했지만, 지금껏 유지하는 건 달리기 정도이다. 참고로 이번 주에는 고작 두 번 뛰었고 어제 달린 3km는 두 번에 나눠서 뛰었다. 국내외 프로리그를 보는 것도 평범한 수준이. 류현진이 잘할 때는 LA 다저스 투수 코치 정도를 알고 김하성이 잘하면 샌디에이고가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다는 정도를 알며, 런던이 연고지인 토트넘에서 활약하는 손흥민이 안와골절로 인해서 월드컵까지 차질이 생겼다는 정도를 인식한다. 나에게 운동은 덕질이 아니고 적당히 즐기는 수준이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코로나 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을 다녔고 분기 한두 번 호캉스를 다녔다. 캠핑을 다니지는 않고 계획적으로 전국을 다니면서 특산물을 먹거나 축제를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나마 온천을 좋아해서 전국 대부분 온천은 다 가봤다. 요즘처럼 공기가 싸늘해지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노천탕이 그립다. 청년을 벗어난 나이에 지치고 힘든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게 좋을 뿐이지 온천 소믈리에를 할 정도는 아니다. 여행도 덕질까진 아니고 적당히 즐기는 수준이다.


요즘 즐기는 글쓰기는 그나마 일 년 반이나 꾸준히 했다. 사실, 글쓰기도 주변에서는 육 개월을 넘기지 못할게 뻔하다고 했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를 덕질이라고 하기에는 애매모호하다. 너무 큰 범주이고 무엇보다 재능이 따르지 않는다. 더군다나 덕질을 붙이기에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덕질이 되려면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더해야 한다. 그리고 글쓰기가 덕질이라고 하면 조금 재수 없어 보인다. 그래도 글을 통해서 얻는 행복에 취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에서 덕질은 아니다.


결국 스마트폰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덕질을 찾지 못했다. 적당히 취미로만 끝내다 보니 아무것도 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덕질을 통해서 성덕(성공한 덕후)도 되어보고 다른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도 주고 싶다. 그래서 적당히 좋아하는 것들을 묶어서 덕질로 만들어 보려 한다. 우선 재수 없음을 감내하글쓰기를 기초하여 살을 붙여야겠다. 적당히 좋아하는 여행과 운동을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기록을 남겨야겠다. 여건 상 일본 여행을 많이 가니까 일본 여행 글을 많이 다루면서 덕질화 시켜야겠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며 독서를 계속해야 스마트폰을 멀리할 수 있으니 여행 에세이를 많이 읽고 여행 관련 정보를 나눌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당장 책장에 무수히 쌓인 일본 여행 책부터 꺼내어 읽어야겠다.


* 오늘까지 공개 SNS 자제합니다. 양해바랍니다.





* 이전 글 : 마테리스트 문근영작가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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