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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12. 2022

부고(訃告)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서장


보글보글 매거진 주제 '유언'에 대한 가상 글입니다.


2022년 11월 6일에 쓴 이 글을 공개하는 상황이 글쓴이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 글은 글쓴이가 습작할 때 우연한 기회로 작성했고, 이후 수년 동안 여러 번 다듬었습니다. 투박하지만 망자가 남긴 마지막 글이니 끝까지 읽어 요.


글을 쓰는 사람은 비슷한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열과 성을 다해 작성한 글을 독자가 읽어주기 바라며 씁니다. 물론, 쓰는 행위만으로 치유하거나 자아를 찾는 등 다양한 목적도 달성하지만, 글은 읽힘으로써 가치가 높아집니다. 물며 글을 읽은 독자에게 영감을 주고 좋고 나쁜 감정을 느끼게 하거나 심지어 행동까지 이끌어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죠. 글을 통해서 얻는 즐거움을 마흔이 넘겨서야 알았고, 뒤늦게 글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흠뻑 취해 허우적거리다 결국 망자가 되어서까지 자기 글을 홍보하는 사람을 만나보시죠.


조금 유별나게 살았습니다. 통상 부고는 가족이나 지인이 쓰는데, 스스로 미리 썼으니 평범하진 않겠지요. 글 쓰는 게 좋아서 이것저것 쓰다가 남겼을지 모르지만 부고 시기와 세부적인 방법까지 기록했으니 유별난 게 확실합니다.


몇 해를 살았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마흔네 살까지생존했습니다. 어차피 언제든 생을 마감해도 크게 괘념치 않았을 겁니다. 평소부터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감정과 생각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까지도 미래보다는 순간에 집중했기 때문이. 한참 글쓰기에 빠졌을 때 작은 가치관이라면서 '찰나에도 진정성 있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꾸준하게 강조했습니다. 결국, 욜로족과 다를 바 없는데, 매번 다르다고 주장했. 아마도 다르게 보이고 싶었나 봅니다. 어쩌면 관종일지도 모릅니다.


국가에서 녹을 받아가며 스무 해 이상 무탈하게 지낸 경력을 보면 성실하다고 볼 수 있겠죠. 적당하게 열심히 살았고 자기 생각을 세상에 관철시키기도 했습니다. 가시적으로 드러난 성과는 없지만, 스스로 만족하며 살았으니까요. 기강과 위계가 확실한 집단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형식과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청개구리 같은 성향을 숨기고 사느라 가끔 일상을 버거워했지만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관점이 변하고 자기 생각과 다른 것을 체득할 수밖에 없어 안타까워했습니다. 물론 대외 공개는 하지 않도록 기계적으로 설정했.


마흔을 넘어서 주변에 오글거리는 말도 스스럼없이 표현했습니다. 글쓰기 덕분에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 다양한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에 직접 겪었던 일을 기록하고 생각과 감정을 나누면서 자기 세상을 넓혔습니다. 그래서 부고도 지인에게 문자로 발송하지 않고 공개된 공간 널리 알립니다.


대호상입니다. 단순히 이번 생을 만족하 살아서 만은 아닙니다. 물론, 멋 부리려고 자주 언급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글쓴이 바람을 깊게 새긴 표현입니다. 부고를 접하고 찾아온다면, 환하게 웃는 글쓴이 영정 사진을 마주하면서 같이 웃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사람이 살아내면서 버티기 힘든 고통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죽음은 늘 슬픔과 고통을 수반합니다. 유독 슬프고 처지는 분위기를 싫어했기에 웃으며 추억을 곱씹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울지 않는 게 제1원칙입니다. 명심하세요.


글쓴이도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실컷 웃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웃는다며 허세 부렸지만 떨리는 손은 며칠 남지 않았을 때 몸에 새긴 아내와 두 딸 이름을 꼭 쥐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새기고 싶었는데, 일과 유교 그리고 늙으면서 글자가 쭈글쭈글해질까 봐 뒤늦게 새겼답니다. 유일하게 슬픈 부분인데, 걱정하지 마세요. 두 딸은 이미 충분하게 세뇌시켜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웃으며 맞이할 겁니다.


잘 살았고 잘 죽었습니다. 함께 새로운 추억을 쌓을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지금껏 쌓은 행복만으로도 충분히 슬픔을 감내하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바쁜 일 잠시 멈추시고 망자가 떠나는 마지막 길에 들르세요. 그리고 차는 놓고 오세요. 제철 특산물과 어울리는 맛 좋은 술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북적거려서 합석하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고민하면 늦습니다. 내일 발인하거든요. 그리고 조의금은 오고 가는 차비로 충분하니 넣어두세요. 혹시, 둘째 딸이 아직 학생이면 용돈으로 주세요. 아! 첫째가 삐질 수 있으니 딱 절반으로 나눠 주시면 됩니다.


만약 못 오시거나 늦으면 생애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 고양시 소재 승화원에서 화장하고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 한 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파주 프리미엄 아웃렛이나 헤이리 마을 놀러 올 때 한 번 들르세요. 선착순 백 명까지는 아메리카노 상품권을 선물하니까 천천히 오셔서 방문자 명단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꼭 남기세요. 망자가 주는 커피, 신선 할 겁니다.


마지막까지 긴 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멋진 세상에서 잘 살다 갑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씨~유, 라면 큰일 나겠네요. 잘 사세요.




추신. 글에 아내가 빠져서 걱정할까 봐 남깁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한 날 한 시에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섬뜩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람입니다. 웃음을 주려고 썼는데, 눈가는 촉촉해지네요.




* 죽음이 무섭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게 많이 힘듭니다. 지난 2년 가까이 글을 쓰며 죽음에 대해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까 꾸준하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보입니다. 제가 글쓰기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싶어서입니다. 지금처럼 글과 생각을 다듬다 보면 언젠가는 죽음을 수용할 수 있겠다고 기대를 합니다. 무섭고 힘든 죽음을 알려야 하는 일은 더욱 두렵습니다. 유언도 부고도. 유언과 고는 다르죠. 하지만, 다음 주에 부고 쓸 일이 생겼습니다. 고양시 소재 독립 책방 너의 작업실에서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출간한 김완 작가님과 죽음 워크숍을 하는데, 그때 제출합니다.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지 유언과 부고를 연속해서 쓰려니까 너무 먹먹했고 처졌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넓게 해석 가능한 보글보글 주제에 부고를 써서 발행합니다. 사실 유언은 작년에 한 번 는데,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이번에 쓴 부고와 결도 같습니다. 부고는 처음 썼는데,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서장이다 보니 가볍게 다루기는 부담스럽지만 진심을 담았습니다. 얼마나 더 살아낼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담대해지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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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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