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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Nov 11. 2022

축복과 애도

<생전 유언장> 을 대신하는 필사

오늘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내려본 마당은 초록 쌩쌩한 클로버와 짙은 갈색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는 낙엽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같은 곳에서도 죽음과 삶이 동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었어요.


요즘 저는 필사를 하고 있어요.

매일 다른 문장들을 배달받아 쓰고 있지만, 늘 뭔가 저에게 의미를 주는 것들이 떠올라서 신기해하고 있습니다.


‘얼마 안 되는 날빛만이 남아있었’ 던 초저녁, 켄트 하루프의 <축복> 필사를 마치고 아침에 서있었던 마당의 같은 곳에 다시 섰습니다.


필사를 하면서 레이첼스의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을 들으며 죽음과 삶을 그린 그의 책을 오랜만에 뒤적거렸어요.


실레의 많은 작품 중 저 그림을 고른 이유는 필사 글 속의 소녀 에일린이 연인을 놓쳐버린 것이 마치 죽음 같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아 번뜩 그 그림이 떠올라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죽음과 소녀>(1915)

검은 옷의 죽음으로 이름 붙여진 그림 속 실레는 그림 속 '발리'라는 연인을 버렸어요. 안정된 가정을 가지고 싶어 결혼을 할 사람을 고르고 함께 살던 발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중산층 반듯한 부모 아래 자란 교양 있는 에디트와 결혼했고 (1915) 발리는 실레와 헤어진 후, 적십자에 간호사로 지원했다가 2년 뒤 (1917)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성홍렬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녀의 나이 23세였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작품의 모델이 되었던 연인 발리와 헤어지고 결혼한 에곤 실레,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도 다음 해 사망합니다.

지금 코로나처럼 스페인 독감이 대유행이었던 1918년, 임신 6개월이었던 부인 에디트 실레가 10월 28일 사망하고 3일 후 에곤 실레도 역시 독감으로 10월 31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죽기 직전의 모습을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기듯 시각까지 기록으로 남겨둔 실레.  

젊은 그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수없이 남겼던 자화상의 대가인 에곤 쉴레지만 자신이 죽어가는 자화상은 그릴 수없었습니다. 대신 이례적인 사진이 책에 공개되어 있었어요.


다시 필사 내용으로 돌아와 봅니다.

부조리하고 무의미하다는 에일린이 ‘삶의 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내 삶을 살면서 살아 숨 쉬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생기가 넘치고 활기차고 치열할 수 있는’ 그런 삶의 질을 원하는 에일린이 어떤 선택을 하며 젊음을 보내게 될지 궁금해졌어요.

외로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법을 터득한 월라의 방법을 배워가게 될까요?


문장 배달로 소설의 한 부분밖에 되지 않은 글을 필사하면서 여러 가지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해두었습니다. 앞으로 그 소설을 읽게 되면 퍼즐 조각 맞추듯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게 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책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 (구로이 센지, 다빈치 )은 2003년에 구입했던 책입니다. 20년전 젊었던 저로서는 그다지 눈여겨 보지 않았던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실레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장래의 아이를 생각하고 그린 <가족>1918 , <엄마와 두 아이>1917 이 그랬습니다. 두 그림속의 엄마를 유심히 보게됩니다. 그런데 아이와 가까이 있는 엄마의 눈빛과 표정이 너무 우울해 보였어요.


‘모든 것이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다’ 고 그림 속에 써두기도 했던 에곤 실레의 그림들을 보다 보니 저도 그날 저녁 우울한 그림 속 엄마의 얼굴로 변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우울한 사건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요즘이라 뉴스를 의식적으로 보지 않고 있지만 브런치 <생전 유언장 쓰기>를 해야 하고, 다음 주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작가님의 워크숍 참여를 위해 숙제도 해야 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피할수가 없다 보니 현실에 그림자가 드리워질 조짐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그렇다고 진짜로 우울하지는 않습니다. 저에게는 마당에서 사진 그만 찍고 들어오라고 창문에 매달려 애교 부리는 메롱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얼마 전 온천에서 뜨거운 물에 화상 입은 메롱이가 또 장난을 ㅠ)


다 우울한 그림은 아닙니다만

아주 난해한 그림이 많은 에곤 실레.

필사를 하면서 제목처럼 ‘축복’을 떠올리지 않고 죽음을 떠올렸지만,

삶과 죽음 / 축복과 애도

둘 다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필사를 열심히 하고 마당놀이를 하느라 피곤해서 이번 생전 유언장 쓰기는 ‘에공.. 쉴레’ 요 …

(저도 글을 읽으실 가족이 걱정되어 공개는 힘들겠습니다.)



보글보글 글 놀이
 11월 2주 차
“생전 유언장 쓰기”


*매거진의 이전 글, 아르웬 작가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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