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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09. 2022

남기는 말

보글보글 11월 1주 글놀이 [생전 유언장]

*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제 글이 고인이 되신 분들과 유가족에게 아픔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디까지나 그저 제가 저의 죽음을 마주하며 쓴 글이니 부디... 


저, 갑니다.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이곳을 떠난다는 것만은 확실한 그곳으로요.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그곳을 몰라서가 아니라 남겨진 이들과 삶에 대한 미련, 아쉬움 때문일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전 그 모든 것이 아쉽지 않아요.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고통, 시련, 슬픔, 우울, 기쁨, 행복, 환희 등등... 내가 아는 만큼은 다 경험하고 느꼈다고 믿으며 모두가 가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이들에게 제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기억됐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고민, 바람 따위는 없어요. 각자 알아서 기억하겠죠. 그 모든 게 저니까요. 


탄생을 축하해 주었던 것처럼 죽음도 축하해 주세요.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어쩌면 모두가 꿈에도 바라던 일일 거잖아요. 인간은 모습, 형태만 바꾸어 우주에 떠돌며 영생을 사는지도 모릅니다. 에너지 양은 늘 일정하다잖아요. 인간이라는 존재로 차지하던 딱 그 양만큼의 에너지를 가진 다른 존재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축하할 일입니다. 


남겨줄 재산 같은 건, 없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죽어도 없는데 몇 년 후에 죽는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네요. 혹시, 다만 얼마라도 남긴다면, 그래서 조금씩 나눠주게 된다면 저도 기쁠 것 같긴 합니다만. 적어도 빚은 남기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신분증에 스티커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제 시신은 모두 기증합니다. 소용이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다요. 드릴 수 있는 게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몸을 기꺼이 내드리겠다는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먹는 것, 움직이는 것에 더 신경 쓰며 살아야했는데 부족했습니다. 


진짜 갑니다~ 

기분 좋게, 웃으며 갑니다. 

그러니, 당신도 웃어요~~ 

좋은 날이잖아요~ 



공교롭게도, 죽음을 앞둔 < 100일 프로젝트 >가 제 브런치 첫 글이었습니다. '100'이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저란 사람은 죽음도 100일 후 계획해서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꿉니다. 정리하고 인사할 충분한 시간을 부여받는다는 헛된 희망. 


마지막 감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어서 다행이다. <D-96>

100일만 산다고 생각하고 하루를 의미 있고 재미있게, 그렇게 수십 번의 100일을 살다 보면 내 인생이 얼마나 풍요롭고 깊어질지... <D-94>

삶을 90여 일 남겨두었다는 것이 마치 석방일을 기다리는 재소자의 심정과 같지 않을까? <D-91>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걸 알아도 끝이 오기까지는 안일하다. < D-89 >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정리할 건 '사람'뿐이라는 생각이다. 사랑했던 사람, 죽기 전에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 사과하고 싶은 사람, 함께 여행 가고 싶은 사람, 사람, 사람, 사람... < D-87 >

"나 없는 세상도 즐겁게, 신나게 사시오~ 저승에서 아는 척하기 있기? 없기!"라고 남편에게 전한다. <D-80>

미안해요... 죽기 전에 꼭 말하고 싶었어요... <D-77>

쓸데없이 열심히 살았다. <D-64>

생전 장례식 플랜 <D-51>

그 어떤 죽음이 삶보다 가치 있을 수 있을까... <D-34>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은 이들이 평범한 삶의 행복을 누리며 살게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다. <D-32>

나는 앞으로도 늘 일을 벌일 것이며 사서 걱정을 할 것 같다. <D-13>


*매거진의 이전 글, 김장훈 작가님의 글입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보글보글과 함께하고픈 재미난 주제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제안해주세요.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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