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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08. 2019

D-100 프로젝트 < D-51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오늘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묵혀왔던, 아니 참아왔던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프로젝트의 반을 남긴 바로 이 시점에 전하고 싶었다. 


<나의 장례식>

몇 년 전부터 '어떻게 늙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왔고 그 고민의 끝에는 항상 '내가 꿈꾸는 장례식'이 있었다. "죽고 나서 할 장례식을 뭘 고민한담?"이라며 의아해하겠지만, 내가 꿈꾸는 장례식은 '생전 장례식'이다. 즉, 내가 갑자기 죽지 않는다는, 예고된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전제하에 내가 host가 되는 장례식이다.


늘 이상했다. 백일잔치도, 돌잔치도, 결혼식도, 회갑연도, 고희연도 모두 주인공이 함께 하는데 장례식만 객들이  울고 먹고 마시고 한다는 게... 과거부터 쭉~~~ 내려온 전통이라고는 하지만 "3일씩 가족들을 묶어두고 고인을 생각하며 슬픔 속에 가둬두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튀고 싶나? 관종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내 장례식이고, 난 죽으면 그만이니까.


PLAN #1.

나와 얕은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내 사망 소식을 접하고 '아... 이 장례식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자니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고 안 가자니 찝찝하고...' 하면서 결국 지인의 장례식행에 봉투만 부탁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와주시는 것만도 고마운 분들에게 (나는 만져보지도 못할) 조의금을 강요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내 장례식에는  마지막으로 꼭 뵙고싶은 지인들만 초대할 계획이다. 결혼식처럼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가벼운 마음과 더 가벼운 주머니만 갖고 오시면 된다.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대접하고 한 분 한 분 인사를 드릴 것이다.


PLAN #2.

장례식에 오긴 왔는데, 너무 뻘쭘할 것 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침체될 것 같아서 소박하지만 즐거운 이벤트를 준비할 계획이다. 아들들이 노래를 불러주었으면 좋겠고, 남편이 기타를 쳐줬으면 좋겠다. 결혼식 때 이정열의 '그대 고운 내 사랑'이라는 곡을 쳐준다더니 입 딱 씻었다. 장례식 때라도 연주해준다면 용서해주리다... 조문객들이 원한다면 나도 한 곡 뽑을 의향이 있다. 무슨 칠순잔치처럼 한복 입고 아들한테 업히고 그런 건 아닐지라도 나를 위한 파티이니 노래 한곡 정도는... 내가 손수 만든 내 일생을 담은 동영상을 시청하며 함께 웃어도 좋겠다.


PLAN #3.

사실, 생전 장례식의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다. 조문객들은 한 테이블에 4~5분 정도 앉도록 미리 세팅을 해놓을 건데, 식사를 다 마치시면 그 자리에서 화투를 칠 계획이다. '고인이 될'내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여가생활이기도 하지만, 장례식 하면 고스톱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니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조문객 한분마다 만원씩 잔돈을 나눠드리고 올인되시면 구경하시는 걸로 해야지... 딱 한 시간만 놀고 나서 가장 많은 돈을 따신 분께는 상품도 드려야겠다. 왁자지껄 웃고 떠들고 놀다 보면 어느덧 장례식에 온 건지 여기가 어딘지 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이 장례식의 목적이기도 하다.


장례식이 끝나면 한 분 한 분씩 손을 잡고 작별의 인사를 하며 떠나보내드리련다. 그들이 나를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을 떠내 보내는 것. 생전 장례식과 잘 어울리는 퍼포먼스다 싶다.


조문객들께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다.

첫째, 절대 울지 말 것.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이 세상 소풍 끝내고 가는 것이니 슬퍼하지 맙시다.

둘째, 빈손으로 올 것.

밥값 정도는 제가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얼굴 한번 보여주세요~

셋째, 즐기는 마음을 가질 것.

밑장 빼기나 눈속임은 하지 말아 주세요. 목숨 걸고 화투 치지 말아 주세요. 웃고 즐기자고 만든 자리에 죽자고 덤비는 것, 쫌 그래요.


정작, 죽음을 코앞에 두면 이런 계획이 한낱 말장난이나 공상, 혹은 현실감 없는 치기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래도 결혼을 준비하고 출산을 준비했던 마음으로 죽음도 준비해야 한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혹자는 죽음에 대해 자꾸 언급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늙고 죽는 일을 외면했던 삶의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늙어갈 것이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긍정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50일이 남았다.

"어떤 일이든 반만 버티면 나머지 반은 무조건 된다."

나머지 50일도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이 분명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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