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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30. 2022

죽음을 새긴 사람

평소 남을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말과 글로 누군가를 다룰 수준도 안되고 잘못 언급했다가 사후에 발생할 불상사를 염려해서 피하는 편이다. 하지만, 얼마 전 글로 담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대상은 청소부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면 죽음을 재단하는 특수청소부이다. 저승사자도 아니고 죽음을 재단한다고 표현한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함께했던 고인의 죽음을, 다시 고쳐서 말한다면 고인이 죽고 난 뒤에 남겨진 현장을, 재단하여 독자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재단은 치수를 맞도록 재거나 자른다는 뜻과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의미도 가진다.


취미로 글을 쓰면서 난관에 부딪친 주제가 죽음이었다. 글벗과 글을 나누던 중 장례식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는데, 감정이 앞서면서 한 글자도 담기 어려웠다. 사실, 글을 쓰기 전부터 죽음은 두려운 대상이었다. 글을 쓰는 시간이 쌓일수록 담대함으로 향하는 듯 착각했지만 결국 주저하며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나마 죽음에 조금 더 다가서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지난 해 늦은 가을 독서 모임 때 접한 죽은 자의 집 청소 덕분이다. 한 달 동안 천천히 읽었고 많은 생각과 감정이 발현했으며 일 만자 이상 기록으로 남겼다. 개인적으로 최근 3년 동안 접한 모든 활자류 중에서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주변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읽을수록 덤덤해지는 데, 고인이 죽은 현장을 정밀묘사화처럼 잔인하게 표현한 부분까지도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고인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고,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까지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번 들으니까 책 덕분에 죽음에 대해 조금 더 다가갔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작가가 너무 궁금했고 기회가 된다면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책을 다시 한 번 읽고나서 SNS로 한 걸음 다가갔다. 운이 좋게도 작가와 가벼운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진심을 알았는지 지금까지 다가갔던 작가들과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임에도 꾸준하게 좋은 글도 많이 올리고 독자와 소통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졌다. 사실, 작가에 대해 큰 동경을 갖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얼마 전 작가께서 주관하는 워크샵에 참석 했는데, 준비부터 진행하고 행사 마무리까지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워크숍 참석자 자리를 손수 정리하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노란 편지봉투에 고이 접어 가을 낙엽까지 붙이고 하나씩 가지런히 놓았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처음 마주한 그의 모습이었다. 프리젠테이션과 강연은 구체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무엇보다도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책과 짧은 글 몇 편을 통해서 작가의 공손함과 배려심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겪어보니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게 느껴졌다.



워크숍이 끝나고 저자 사인을 받는 시간이 주어졌다. 기념이 될 만한 선물을 주고 싶어서, 사무실에 모아두었던 기념품과 술 등 몇 가지를 미리 가방에 싸서 참석했다. 글벗 중 한 명에게 배운 좋은 행동이다. 어차피 작가께 하나를 선물하고 다른 선물은 글벗에게 나눠 줄 생각이었다. 가벼운 선물을 전하고 받은 사인에는 '사랑말고 누구도 아니신'이란 문구가 가슴에 와닿았는데, 내 이름 뒤에 작가라는 호칭이 부담스러웠다. 작가 아닌데요라고 말하는 게 더 어색해서 본업을 가볍게 전했다. 행사를 종료한 다음에도 공간을 정리하는 모습까지 모든 부분에서 잔잔하게 남았다.


며칠 지나지 않은 날, 책방 주인께서 시집 한 권을 건넸다. 작가께서 주셨다는데, 조금 얼떨떨했다. 책을 다 읽고나서도 가슴속에 많은 게 남았었는데, 워크숍이 끝나고도 무언가 계속 남는다. 누군가의 흔적이 나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혹시, 우연히 다시 만난다면 반갑게 웃으며 안부를 묻고 싶다. 그가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 작년 독서모임 때 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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