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Dec 06. 2022

딸이 만났던 친구를 이제는 내가 만나려 한다


일요일마다 큰 딸은 그림책 수업을 받는다. 수업이 끝나면 그림책을 집에 가져와 책장 여기저기에 마구잡이로 꽂아 둔다. 오늘은 책장 앞에 앉아서 그동안 읽은 그림책을 한 권씩 찾아서 꺼냈다. 바닥에 쌓인 그림책을 한 권씩 다시 집어넣으면서 큰 딸에게 설명을 들었다. 이 책은 재미있었고, 이 책은 조금 슬펐고, 이 책은 잘 기억나지 않고, 이 책은 정말 재미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야겠다며 반가워했다. 그림책을 책장 에 모아두니 제법 근사했다.



사실, 그림책을 정리하려는 생각은 얼마 전 아내와 재정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부터이다. 이번 달부터는 긴축 재정정책에 따라 그림책은 빌려서 보기로 했는데, 여러 이유로 그냥 구입하기로 했다. 대신 아내와 나도 읽어보고 둘째에게도 읽어주기로 했다.



다짐을 실천하려고 책상에 앉았다. 오늘 수업 때 읽고 가져온 코끼리 코가 그려진 듯한 '커다란 비밀 친구'를 펼쳤다. 편안한 그림 사이로 슬퍼 보이는 아이 한 명이 나타났다. 큰 딸 말처럼 슬프겠다는 느낌이 몰려왔다. 다만, 지면 두 장에 단 두세 문장 정도만 쓰인 책장을 넘기면서 책값을 쪽수로 나눴을 때 비용이 얼마일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편안한 나뭇잎 그림 사이에 쓰인 짧은 두 문장이 내 시선과 머릿속 계산을 멈춰 버렸다.


"그럴 수 있어. 그래도 괜찮아."


사실, 오늘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여러 가지 일로 무거웠던 마음이 한순간에 편안해지는 그림과 문장을 만났다. 흔한 문장이었지만 복잡한 머릿속을 맑게 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끝까지 책을 다 읽는데, 마지막에는 더 큰 메시지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하며 마침내 마비시켰다.



그림책 속 짧은 문장은 아이들에게 쉽게 읽히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게 아니었다. 넓은 지면에 따뜻하게 그린 그림 사이로 잘 어울리는 완전한 문장이 놓이면서 독자에게 깊은 감동과 위안을 가져다준다.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한 경제나 인문서적, 감동을 주고 사유를 넓히는 문학서적과는 다른 방법과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마치 큰 아이에게 매주 일요일 친절하게 다가오는 은하수 선생님처럼 말이다. 이제는 나도 그림책에게 조금 더 다가가야겠다.


* 매주 일요일 그림책 수업이 끝나고 손 편지를 써주는 은하수 선생님


** 인스타그램에 올린 짧은 글을 다듬어서 발행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을 새긴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