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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Aug 19. 2023

아버지 소풍 떠나는 날



"아버지, 어디 가시는데요?"

"소요산"

"거기는 왜 가시는데요?"

"적당히 멀어서"

"네?!"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아버지에게 행선지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무색했다. 적당히 멀어서 간다는 아버지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되묻지 않았다.  해 전 칠순을 넘기면서 부쩍 외롭다며 그늘진 얼굴을 많이 보였는데, 소요산으로 향하는 발걸음과 목소리에서 소풍 떠나는 아이 모습이 비쳤기 때문이다.



아침에 나눈 대화 때문인지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다룬 기사가 생각났다. 검색해 보니 지역교통공사 예산 적자, 효용성, 공정성뿐만 아니라 빈번하게 발생하는 승객사이 마찰까지 다루면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비해 제도가 따라오지 못한다는 맥락이었다. 사실, 제도가 바뀐다고 해도 아버지는 일흔을 훌쩍 넘겼기 때문에 한걸음 뒤에서 뒷짐 지겠지만 비슷한 즐거움을 누리는 아버지보다 조금 어린 어르신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버지 말에 따르면 온양온천이나 춘천까지도 나들이 가는 사람이 많다던데, 소소한 기쁨이 끊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다른 사람 소풍이 중단될지 모른다는 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닥쳤다. 제도가 바뀐 게 아닌 건강 악화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았고 전철은 더 이상 소풍용이 아닌 항암 치료 목적의 병원 진료용 운송수단으로 바뀌었다.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이며 집을 나서던 철로는 사라졌다. 살아내기 위해서 항암 치료를 받으러 가는 철로만 남았다. 지하철은 어렵고 힘든 암 환자에게 진료 여건을 보장해 주는 운송 수단이 되었고 복지정책이 향하는 방향에 부합하게 되었다. 순기능을 했지만 웃음이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바쁜 일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지하철로 향하는 아버지조차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다행히 올해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했다. 3년 동안 지하철을 타고 병원 진료를 다녀온 결과이다. 완치했다지만 아직 소요산을 다녀올 체력은 아니다. 다만, 종묘나 여의도는 혼자서 천천히 다닐 정도이다. 이제는 세상에 몇 명 남지 않은 친구와 만나기 위해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아버지 시간과 체력을 아낌없이 허비한다. 덕분에 외로움과 허전함은 조금 수월하게 지워진다. 아버지 소풍은 시인이 말한 진정한 소풍이 되었는지 모른다. 앞으로 소풍을 얼마나 더 즐길지 모르겠지만, 소풍 떠나는 날 집을 나서는 아버지 뒷모습을 조금 더 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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