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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Aug 09. 2023

꿈을 꾸기 싫은 아이



다섯 살 막내가 기도를 합니다. 돌 때즈음 유아세례는 받았지만, 마지막으로 성당을 다녀온 게 몇 해를 넘겼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그래서인지 막내는 하늘님이라는 어색한 단어와 더 어색한 손동작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자신이 하늘님께 드린 기도를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물론, 아빠는 관심 없습니다. 보나 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막내 역시 관심 없는 아빠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기도를 더 큰 소리로 떠듭니다. 책을 읽는 아빠는 눈에 보이는 활자보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우렁찬 기도 소리가 머릿속에 새겨집니다. 그런데, 허무맹랑한 기도가 아닙니다. 꿈을 꾸지 않게 해 달라는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나쁜 꿈, 이상한 꿈, 무서운 꿈까지는 이해 했는데, 좋은 꿈, 신나는 꿈, 재미있는 꿈도 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놀란 아빠는 읽던 책까지 놓쳤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막내 기도에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현실과 꿈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인지 아니면 즐거운 꿈을 꾸다가 악몽으로 바뀐 트라우마라도 있는지 근심과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아빠가 걱정하는 사이에 막내 기도는 다 끝났습니다. 아빠는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합니다. 오늘은 엄마도 옆에 없는데, 무섭고 불안해집니다. 걱정하는 아빠를  막내는 오히려 달래주려는지 한 번  웃더니 이불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아빠는 려는 막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넵니다. 도대체 꿈을 꾸기 싫은 이유가 뭐냐며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합니다. 막내는 불편한 표정으로 말하기를 주저합니다. 아빠는 불안해하는 아이를 안아주려고 팔을 벌려 다가오라고 손짓합니다. 어둡게 보였던 막내 표정이 괴상하게 변합니다.


 "싫은데, 내가 왜, 얼마 줄 건데?"


막내는 장난치며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합니다. 막내가 더욱 안쓰러운 아빠는 다가가 달랩니다.


"좋은 꿈은 괜찮은 거야. 그러니까 꿔도 괜찮아. 그리고 아빠가 옆에서 같이 잘게. 걱정하지 마."


막내는 그제야 안도감이 생겼는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합니다.


"아빠, 꿈은 반대야. 좋은 꿈을 꾸면 안 좋은 일이 생기니까 슬프안 좋은 꿈을 꾸면 꿈에서 슬퍼지잖아. 그래서 꿈은 전부 꾸기 싫다고. 그러니까 저리로 좀 가. 더워서 불편해."


막내는 짙은 한숨을 한 번 더 깊게 내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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