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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Jul 06. 2021

내 삶의 퓰리처상

I0234_ep.40 사진이야기



 퓰리처상(Pulitzer Prize)은 미국의 유명한 언론인 J. 퓰리처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매년 사진과 뉴스 등 여러 분야에 대해서 우수작품을 선정하는 저널리즘 분야의 최고 권위 있는 상이다. 다양한 분야 중 단연 사진 압도적으로 유명하다. 나도 퓰리처상은 사진만 선정하는 줄 알았다. 매년 선정하는데, 6.25 전쟁, 베트남 전쟁, 기아문제 등 국제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던 사진들이 수상했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 많아 수상작 전시회를 하면 대부분의 수상작 들을 한 번쯤 본 기억이 있다.




초록 가득한 너의작업실


 어제는 조금 다른 일상을 맞이하며 한가한 오후를 보냈다. 조용한 공간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멋진 사진 한 장이 떠올랐고 사진에 대한 내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난 유년시절부터 사진을 참 좋아했다. 아마도 그 시작은 막내 외삼촌이 선물한 소형 SLR 카메라를 받고 나서였을 것이다. 고장 난 카메라였지만,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면서 신기해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현상된 필름을 햇빛에 비추 안에 맺힌 상을 보는 것 좋아했다. 당시는 필름 전체를 인화하기 부담스러워서 현상된 필름 중에서 맘에 드는 몇 장만 선택한 다음 인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름을 여러 각도로 돌려가면서 인상 찌푸리며 작은 상을 꼼꼼하게 살펴보던 생각이 난다.


 대부분 아이들 찰칵거리는 기계 소리와 뷰파인더를 통해 렌즈 밖의 세상을 볼 때의 경이로움 때문에 카메라를 처음 접해도 신기해하면서 좋아한다. 우리 딸들도 카메라를 많이 좋아한다. 스마트폰을 훨씬 더 좋아하는 게 문제이긴 하다. 아내도 카메라를 정말 좋아한다. 나 보다 많은 지식이 있고 대학시절 출사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다. 얼마 전 라이카 매장에 가서 직원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난 사린이 또는 카린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줬다. 실제로 아내와 둘이 사진을 찍으면 아내 사진이 구도도 좋고 멋지게 나온다. 난 얻어걸리는 경우를 제외하고 건진 사진이 별로 없다.




 다시 돌아와서, 나카메라를 어려서 접하고 좋아만 하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사진부에 들어다. 농구부와 사진부 2개의 서클을 동시에 가입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사진부는 나를 끝까지 받아줬다. 결국 내가 질려서 탈퇴를 했다. 당시 서클은 1인 1개만 가입 가능한 불문율이 있었다. 내가 그걸 깼다는데, 몰랐다. 1년이 지난 뒤에나 알고 문제 삼은 선배들이 더 이상다. 


 사진부는 4층 건물의 3층 구석에 있다가 옥상으로 옮겼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의자 8개 정도를 놓고 앞에서 강의할 수 있는 장소와 한쪽에 제단기가 있는 책상, 각종 약품과 인화지가 있는 캐비닛, 그리고 문제의 암실이 있었다. 암실은 현상하는 곳과 인화하는 곳이 구분되어 있었다.


 담당 선생님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선배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어서 후배들에게 하나씩 강의를 했으며, 졸업 후 사진관을 하는 선배들이 종종 찾아와 특강도 했다. 아직도 카메라의 명칭과 T B I 2 4 8 15 30, 1 1.4 2 2.8 등 셔터 속도와 조리개 수치가 기억난다. 강의실 앞에 있는 피사체를 기준으로 아웃포커싱 같은 촬영 기법을 연습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있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 기억력 나쁜 내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을 보면 당시 '구타 학습법'도 효과는 있 보다. 결국, 그게 싫어서 3학년 때는 탈퇴 했다.


 한 번은 출사를 나가서 인물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난 인물 사진보다 풍경 사진을 좋아하는데, 인물 사진을 찍으라는 것부터 싫었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촬영해야 하니 몰래몰래 찍으라는 거다. 지금 같으면 벌금형 감이다. 그렇게 사진과 나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연남 사진관


 당시에 유명한 카메라가 생각나진 않지만, 미놀타 카메라를 많이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히 난 카메라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첫 출사 때 다른 사람 카메라 빌려서 이것저것 찍었다. 어차피 학교에는 현상액과 인화지가 많이 있어서 열심히 찍어다 현상과 인화만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연신 찍었다. 필름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3~4통 촬영하고 학교로 돌아가서 인화까지 했다. 무슨 사진을 찍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암실에서 선배들에게 '거지같이 찍었다고' 두들겨 맞았던 기억만 난다. 사진이 점점 싫어지던 순간들이었다.


 그래도 2학년이 되면서 사진과 애증 관계가 형성되었는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로 진학을 결정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그러다 금방 식었고 기억에서도 히면서 사진과 이별하게 되었다.




 그런 사진이 다시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아내의 출사 사진을 본 다음부터이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사진이었다. 웅장한 자연 속에 함께 있는 작지만 소중한 피사체를 좋아했다. 피사체는 작지만 자연의 경이로움과 잘 조화되는 멋진 사진이었다. 메타세콰이어 나무처럼 길고 게 뻗은 나무들 사이에 작은 피사체 하나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던 단 한 장의 사진이 나를 다시 끌어들인 것이다.


 그 뒤로 아내와 함께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 폰으로 찍는 사진 중에는 비슷한 유형의 사진이 많이 남았다. 어느덧 취향이 되었다.



 인물사진은 뒷모습을 좋아한다. 자연스러움을 강요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진이 좋다 보니 뒷모습을 많이 찍게 된다. 가족을 뒤에서 지켜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더하여 앞모습보다 더 솔직한 게 뒷모습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인스타 사진 중에 유독 뒷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많다.


좋아하는 뒷모습들


 이렇게 사진에 대한 애착이 있나는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많이 찍고 모으기 시작했다.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의 매력을 잘 알기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브런치에 플랫폼을 잘 만들어서 소중한 추억 조각을 하나씩 남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어제 매거진을 하나 추가했다. 내 삶의 퓰리처 상으로 제목을 정했고 다행히 영문 퓰리처 주소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그대로 사용했다. 이제는 내 삶에서 소중했던 사진들을 선별하여 그 당시 추억과 함께 기록으로 남기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내 삶의 영역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길을 걷연하게 들른 작은 독립 책방에서 시작해서 미라클 모닝을 알게 되었고, 아침 글쓰기를 하면서  글쓰기 모임을 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옛 추억이 깃든 사진 기록을 남기려 한다. 점점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있다.




 분명 누군가는 나에게 일이나 제대로 하면서 글을 쓰던지, 글이나 제대로 쓰면서 사진을 찍던지, 아니면 육아나 제대로 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이렇게 조금씩 삶의 영역을 넓히다 보니 아내처럼 폴리매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한다. 

  새벽에 여러 번 잠에서 깨어 피곤할 줄 알았는데 오늘도 상쾌하다. 단지, 사진 이야기에 빠지다 보니 출근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서둘러야겠다. 우선 일이나 제대로 하자.

         

영광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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