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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Aug 25. 2023

완전한 동네 책방을 가다

영이들의 너작 침공기



광복 78주년을 기념하여 동네 책방 너의 작업실(이하 너작)이 경기도 고양시 정발산 인근에서 새롭게 단장했다. 밤가시 초가 기운을 정면에서 받을 수 있는 무궁화 에비뉴(TVN 알쓸별잡 1회 편 맨해튼 거리 설명 부분 참조)로 자리를 옮겼는데, 도로 옆 아담한 숲 속에 단정하게 자리를 잡았다. 조선 후기부터 경기도 서쪽 한강 하류 근처 밤가시 초가마을은 전국에서 풍월 좀 읊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던 터였다. 평소 주술에 관심이 많던 책방지기 탱님은 선조들 기운을 이어받아 모두가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작업실을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조성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세상에 태어난 영이 맑은 아이(이하 영 맑은 아이)와 어쩌다 태어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가 자주 아픈 아이(이하 이 상한 아이)는 너작 리뉴얼 소식을 접하자마자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영 맑은 아이는 자신이 소싯적 그림책 좀 즐겼던 공간이라며 반드시 찾아가야 한다고 쿵쾅거렸다. 아무 생각 없는 이 상한 아이는 새로운 놀이터가 생겼다는 기대감들떠서 집을 나서야겠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분명 책방지기가 가벼운 마음으로 오라는 공지에도 불구하고 굳이 선물을 들고 가겠다는 무소유 림(10년 후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할 예정)의 결정에 따라 평소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화훼 단지로 향했다. 영이들은(영 맑은 아이 + 이 상한 아이) 세상에 단 한 종 밖에 없을 듯한 로즈마리와 이름도 모르는 허브 하나를 골랐다. 책방과 어울릴 법한 작은 화분과 받침대 그리고 분갈이할 분까지 구입하여 결재하고 나니 기성품(?) 보다 더한 가격에 노동까지 해야 하는 이유를 반드시 찾아야 하는 숙제까지 떠안았다. 물론, 정성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면 해결되지만, 정답인지는 도통 모르겠다.


계산대 근처에서 파리지옥을 발견한 상한 아이가 가게에 파리가 있을지 모른다며 반드시 사야겠다고 때를 쓰는 바람에 오 분가량 실랑이를 했다. 파리도 속아 넘어갈듯한 거짓말을 구사하여 달랜 뒤 주차장 옆에 놓인 가로수 밑으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삼천 원 정도로 책정 가능한 노동력을 투사하여 분갈이를 직접 했다. 물론, 영이들은 손만 살짝 대고 뒤처리는 전혀 하지 않은 채 분이 아주 조금 묻은 손을 마치 변이라도 묻은 것처럼 호들갑 떨며 화장실로 향했다. 전장정리는 늘 남은 자 몫이었다. 영이들과 캠핑을 가기 싫은 궁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훼단지에서 멀지 않은 너작 근처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자마자 영이들은 동시에 자기가 완성한 화분을 들고 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순간 선택만 하고 살며시 손만 닿아도 자기 것이 되는 세상은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지들 화분으로 무장한 영이들은 밤리단길 핫플 너의 작업실로 그토록 뻔뻔하게 침공했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놀란 탱님은 우물쭈물하며 라테 온도를 맞춰야 할지 가게를 지켜야 할지 당황했다. 괴기스러운 이 상한 아이 웃음을 받아주며 절대 흔하지 않은 허브화분에 기뻐했다. 이 상한 아이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즐겼고, 다행히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파괴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신은 테라스와 어울린다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 설탕보다 소금을 좋아하는데도 이가 상한 아이는 근처에 진짜 놀이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한편, 소싯적 그림책 좀 즐겼던 허세 가득한 영 맑은 아이는 책을 읽는 척하다가 이 상한 아이의 놀이터 발언에 귀가 솔깃했다. 결국, 영이들은 너작을 침공한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아서 자신들이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직시했다. 제국주의 사상으로 똘똘 뭉친 영이들은 점령지에 흔적을 남겨야겠다며 소중한 기록물(방명록)에 낙서까지 했다. 너작을 삼 년 가깝게 아끼며 기록물 근처에 얼씬도 못했던 남겨진 자는 처참한 그들의 만행을 목도하며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침공당한 너작이 허브 밭으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십 분이었다. 이탈리아 남부 아그리투리스모나 프랑스 프로방스에서나 볼 법한 아늑한 테라스에 너작과 조금 닮은 화분에 결코 흔하지 않은 로즈마리와 무명 허브가 깔렸다. 포로가 된 탱님은 1만 팔로워가 넘는 인스타 계정에 허브 화분 사진과 함께 정복자 찬양 글을 올리며 항복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탱님은 라테 값을 받지 않겠다는 괴상망측한 소리를 해대며 정성을 다해 고소한 라테를 상납했다. 영이들에게 혼이 빠진 탱님은 무소유 림이 20가까이 군에서 복무하며 특임단과 레바논 파병 그리고 특전 무술 시범까지 선보인 실력자임을 잠시 간과했다. 무소유 림은 허술 탱의 틈새를 발견하자마자 최근 도입한 신무기 갤럭시 z flip 5를 카드포스기 근처에 가져다 대는 고급 기술을 구사하며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공습경보는 해제했고 모든 게 아름답게 끝났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놀이터를 향하는 영이들, 최신 무기를 자랑해서 기쁜 무소유 림, 조용히 뒤를 따르는 한때 남겨진 자는 아늑한 공간에서 사라졌다. 이제 남겨진 자는 탱님이 되었조용히 허리를 숙여 허브 밭을 정리했다. 고요한 너작에서 이상 문학상을 준비하는 작업인들은 이 상한 아이의 기운을 십분 받아 평소와 다름없이 집필을 이어갔다.




- 한 줄 요약 -
완전한 너의 작업실 홍보글입니다



* 가오픈 기간에 다녀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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