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Sep 01. 2023

구독자 천 명보다 소중한 한 명



브런치에서 2년 넘게 (처음에는 3년이라고 적었다가 따져 보니 틀렸다) 유영하며 구독자 수나 조회수 등 통계에 대해서 둔감해진 지 오래되었다. 이제는 숫자가 큰 의미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구독자가 많다고 해서 글이 좋거나 많이 읽히거나 좋은 생각과 의미를 건네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하게 경험했다.



그렇다고 해서 구독이나 좋아요 알림을 진 않았다. 알림이 울리면 내용을 확인하고 링크를 따라가서 누가 문을 두드렸는지 찾아보기도 한다. 내 허전한 글에 시간과 정성을 들였는데,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댓글이라도 남겨 주는 경우에는 관심작가로 설정하고 천천히 찾아가서 글을 읽고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나이, 성별, 지역, 학벌, 직업 따위는 버리고 글벗이 되어 서로 응원과 격려를 하며 글쓰기 동력까지 주고받는다.






브런치에서 나름 오랜 시간을 보내며 구독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아내가 첫 구독을 했을 때나 구독자가 백 명이나 천 명을 넘겼을 때도 생생하다. 말의 품격, 글의 품격을 쓴 이기주 작가가 구독하며 응원해 주었을 때나 유명 작가들이 구독하면서 반사이익으로 구독자가 급등했던 순간도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늘어나는 구독자에 비해 제자리인 글 솜씨 때문에 오히려 부담감만 커졌다. 매일 꾸준하게 썼지만, 도통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글럼프나 글태기도 겪어보고 결국 어쭙잖은 이유로 한동안 브런치를 떠나기도 했다.



여섯 달만에 다시 돌아와서 글을 쓴 지 두 달 정도 지났다. 쉬는 동안 구독자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글을 발행하면 흔적을 남겨주는 고마운 작가들도 여전히 브런치를 지키고 있다. 함께 매거진만들었보글보글 작가들에게도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최근 라라크루에 가입하여 글 쓰는 동력도 얻고 있다. 한 주에 두 편씩 발행하는 것 외에도 호스트에 이끌려 소소한 이벤트도 참여하며 글밭을 다진다.



글을 꾸준히 발행하면서 구독자도 조금씩 는데,  감사한 일이지만 큰 감흥은 없다. 다만, 관심작가도 덩달아 늘면서 글 발행 알림이 계속 울리는 바람에 브런치 글을 많이 읽게 된다. 이상하게 며칠 전부터는 알림이 잘 울리지 않는다. 여하튼, 어떤 작가 글은 알림기다리기도 하지만, 취향이 다르거나 이해가 어려운 글은 숙제하는 느낌으로 읽기도 한다. 읽고 싶은 글만 읽어도 되지만 읽어야 할 글을 통해서 글세상을 더 넓힌다고 생각하면서 나름 의미를 부여한다.






며칠 전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지 않은 날이었다. 그런 날은 좋아요와 새로운 구독 알림이 조용한데, 이른 저녁 즈음 알림이 연신 울렸다. 누군가 구독하고 여러 글을 읽어가며 좋아요를 눌렀기 때문이다. 고맙고 반가운 일이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던 터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는데, 새로운 구독자를 확인하고 흠칫 놀라 달리던 차까지 멈춰 세웠다. 지금 구독자가 천 명 정도라서 제목에 천 명이라고 썼지만, 사실 십만 명이나 백만 명이 구독한다 해도 그날 구독한 독자 한 명에게 얻은 기쁨을 넘어서진 못할 것이다.



https://brunch.co.kr/@i0234/1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브런치 첫 글에서도 밝혔듯이 아내와 딸에게 글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선물하 위해서였다.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글을 발행하면 아내에게 먼저 공유한다. 아내에게 공유하는 찰나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독자도 계신데,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두 딸은 아직 브런치 글을 접하기에어려서 더 컸을 때 아빠가 쓴 글을 읽으며 흐뭇해하는 상상을 .



하지만, 상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이 되었다. 카카오톡을 잘 쓰는 큰 딸이 브런치에 가입했고 지금껏 쓴 글을 읽으며 좋아요를 남긴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어깨너머로 본 적은 있었지만 조금 달랐다. 직접 독자가 되어 구독하고 글을 하나하나 읽는 상황을 맞닥뜨리자 조금 더 신중하게 쓰고 더 열심히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큰딸의 무분별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려고 시간을 통제했더니, 일찌감치 사용 시간을 다 허비하고 통화나 톡 정도만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것저것 만지다가 카카오스토리에 게시된 글을 발견했던 것이다. 링크를 따라서 간단한 브런치 가입절차를 마치고 자신과 연관된 글이 읽다 보니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딸 성향을 잘 알기 때문에 잠시 즐기다가 식을 게 뻔하지만, 앞으로도 꾸준하게 글을 써야겠다는 동력까지 다.



아이들이 스무 살이나 서른 살쯤 그러니까 내가 예순 살이나 그 이상 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남긴 투박한 글이 어느 공간에 새겨져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찾았다. 꼭 브런치일 필요는 없지만 이왕 시작한 곳이니 이곳에 계속 써야 할 이유도 조금 더 선명해졌다. 더구나 아직 출동도 하지 않은 채 대기 중인 다섯 살 막내도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딸이 차분하게 앉아서 글을 읽어 줄 그날까지 연필을 꽉 쥐어야겠다.




* 한 줄 요약

구독자 백만 명 보다 소중한 한 명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완전한 동네 책방을 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