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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Aug 24. 2021

아이 이름이 육아에 미치는 영향

세상 즐거운 아이 세이



 둘째 딸 '세이'는 이름을 정말 잘 지은 것 같다. 이름이 예쁘기도 하지만 여기저기 이름을 가져다가 활용하기가 참 좋다. 영문 이름도 'say'라고 지었는데 커서 사업을 하거나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딩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처음에는 기쁠 '희'를 사용하려 했는데, 즐거울 '이'가 어감도 좋고 중성적인 느낌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선택했다.


 둘째 육아일기의 제목을 정하기 위해서 고민을 하는 중에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애 세이', '세이 에세이', '세이의 세이', 'OㅅO', '세이 세이', '세이 에 세이 예예예' 무엇을 해도 느낌이 괜찮다. 육아일기를 쓰더라도 감성으로 다가설 수 있게 제목을 정해야 하는데, 뭐하나 빠지는 게 없어서 참 부럽다. 가뜩이나 얼굴이 작고 눈, 코, 입 비율이 좋아 향후 출중한 외모가 기대되고 기회주의적 성향과 처세술을 본능적으로 장착하고 있으며, 위기의 순간에는 애교와 위트가 충만하여 앞으로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법한 존재이다. 이렇게 세이와 관련된 것을 아내와 대화하면 늘 결론은 같다. 축복받은 유전자라고 결론을 내린다. 팔불출로 보이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도 치우칠 수 밖에 없다. 내 자식이다.




 세이의 가장 큰 특징은 말이 많다. 우리는 영문 이름이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쉴 새 없이 떠든다. 육아의 신 장모님께서는 대응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적절하게 대응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디까지 신경을 써야 할지 늘 고민이 될 정도이다. 내가 퇴근하면 큰 딸이 먼저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5분가량 꺼내 놓고 돌아간다. 대부분 내 대답은 "오~ 정말. 대단해. 역시 우리 딸이 최고네."의 반응이 이어지고, 이어서 등장하는 문제의 세이는 앞에서 대화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말할래~~"로 시작하면 언니의 2~3배 정도 매번 비슷한 말을 설파한다. 주로 내용은 그때 생각나는 아무거나 말한다. 예를 들어 "아빠, 아빠, 아빠, 오늘 어린이집에서 예림이랑 미끄럼틀 타고 놀았어" "근데 아빠는 뭐해?" "아빠 나 얼음 먹고 싶어요!" 같은 형태의 생각 없는 아무 말들을 앞뒤 연결 없이 마구 던져진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필요한 얼음을 먹고 싶을 때는 존댓말을 하는 치밀함을 보인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하나씩 꼼꼼하게 답변해줘야 하는 게 맞지만 BPM 150 정도를 마흔이 넘어가면서 따라가는게 쉽지 않다. 게다가 둘째는 언어적 오류를 복구하는 능력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반복하는 라임을 습득했다. "아빠, 어린이집 다녀왔어요."를 한번 말하기 위해서는 "아빠", "아빠", "아빠, 어" "아빠", "아빠, 어린이", "아빠", "아빠", "아빠, 어", "아빠, 어린이집 다녀", "아빠", "아빠, "아빠, 어", "아빠, 어린이집 다녀왔어요" 형태로 엇박자까지 써가며 세상의 모든 아빠를 부른다. 혹시 내가 다른 일을 하거나 큰 딸과 대화를 하느라고 집중 안 하면 "아빠, 어"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소리 지르며, "내가 말할 거야"라면서 자신에게 모든 것을 집중시키려고 한다. 우리 가족은 세이의 이런 말투에 대해서 웃으며 반긴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소심한 걱정만 계속한다. '아이가 같은 말을 반복해요'를 초록창에 검색한다. 자폐 스팩트럼부터 언어와 정신적 문제에 대한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많은 글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나만 생각하는 세이의 증상을 하나씩 가져다가 맞춘다. 점점 비슷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더욱 근심과 걱정이 커진다. 이런 것을 기우라고 들었다. 많은 생각을 하고 각종 테스트를 해보게 된다. 매번 세이에게 말할 때 "아빠 눈 보고 말해"라며 시선이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반응에 대해서 조마조마하게 결과를 쳐다본다. 그러다 잘 따라오면 안심을 하고 가끔 따라오지 않으면 소심한 걱정은 산더미처럼 커지게 된다. 혼자 고민하다가 아내에게 소심한 걱정을 말하면 멍청한 걱정으로 바뀐다. "아무래도, 말하는 게 좀 이상한 거 같아!" 단번에 욕을 먹지만, 다시 또 나는 걱정을 하면서 산다. 정말 멍청한 걱정이기를 원하면서 매번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고질병인데, 고쳐지지 않는다. 사실은 첫째 때도 소심한 걱정을 했었다. 첫째는 반복행동을 많이 했다. 유심히 큰딸의 행동을 관찰하던 나는 초록색 창에다 검색했고, 비슷한 글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 글을 읽고 점점 더 걱정이 커져가는 동일한 유형의 과오가 있었다. 다행히 사실이 아니어서 잘 자라고 있지만, 내 근심과 걱정은 나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불편을 주는 게 사실이다.

 




 첫째를 키울 때도 소심한 걱정을 하나씩 없애고 줄여가면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둘째는 그나마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소심한 걱정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불안을 조장하면 안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상황과 걱정스러운 요소들을 자꾸 확인하는 이 몹쓸 버릇이 이제는 사라졌으면 한다. 아내 말대로 그럴 시간에 애들이랑 놀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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