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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Jul 09. 2021

스스로 손톱을 자를 수 있는 나이는?

I0234_ep.42 어쩌면 두 딸의 육아일기 #2


"애들 손톱 좀 잘라줘라!"


 특별명령 1호가 내려왔다. 우리 집 손톱 절단 전문가가 출동한다. 아내다. 육아의 전담은 장모님께서 하지만, 눈이 침침하니 손톱 자르는 일은 잘 시도하지 않는다. 나도 2 ~ 3번 시도했는데, 아이의 살점이 같이 잘릴까 봐 조마조마하다가 결국 실패 했다. 노안이 오는 것도 한몫을 한다. 생물학적으로 마흔을 넘어가면 노안이 온다고 어느 안과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손톱과 발톱은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자르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의 자르는 시기는 장모님의 손톱 손질 명령이 떨어지면 즉각 시행하거나 평소 같이 놀아주다가 살짝 긁히는 느낌이 드는 시기에 한다.



 나의 경우는 대중없다. 적당하게 길러졌다고 생각하면 자르는데, 머리나 몸을 슬금슬금 긁다가 손톱으로 인해서 상처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르는 것 같다. 발톱을 손질하는 기간은 좀 더 길다. 매일 달리기를 하다 보니 요즘에는 2~3주에 한 번씩 손질하는 것 같다.

손질 시기가 늦어지면 어김없이 작은 발가락의 발톱이 자기보다 큰 발가락의 옆구리를 다치게 하여 피를 본다. 

하루 종일 양말 속에 숨어서 자기들끼리 치열하게 싸우느라 저녁에 샤워할 때나 되어서야 전장상황을 살필 수 있다.




 우리 집 네일 아티스트께서 가끔 내 손톱도 잘라 주신다. 난 그 순간의 기분이 너무 좋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귀를 파주거나 손톱을 손질해 주면 그렇게 좋았다.


 양반다리를 한 어머니 허벅지를 베고 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살살살 귀를 파주셨다. 양쪽 귀를 다 파고 나면 한 손씩 번갈아 가면서 손을 쪼물딱 쪼물딱 거리면서 손톱을 잘라주셨고, 그다음은 발톱까지 다듬어 주셨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아내가 내 손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되면 온전하게 내 몸을 맡겨둔다. 어머니와 다른 점 하나는 내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아내와 같이 손톱이나 발톱을 주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둘만의 교감 시간을 가진다. 어머니의 일방통행 사랑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아내와는 함께 하는 느낌인데,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아내는 노동을 하고 나만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아이들도 같은 기분이면 좋겠는데, 손톱 손질한다고 하면 큰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는 것을 보니 아이들과도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

함께 손톱을 손질하는 게 부모 자식 간의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집중하다 보니 교감의 시간이 되는 것 같다. 첫째의 경우 겁이 많고 소중한 것을 버리기 싫어하다 보니 손톱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갈 때마다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너무 집중한다. 둘째는 아무 생각 없이 떠들기만 하고 가끔 소리를 지르는데, 창피하다. 그 상황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웃기면서도 나에게 작은 행복과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  


 조금 확대해서 해석한다면, 내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는 행위인데,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엄마와 딸이 동시에 작은 손톱 하나에 집중하면서 잘려나가는 티끌을 주시한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해서 내 몸의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들을 부모와 함께 하기 때문에 성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내 확대 해석에 스스로 실소를 한다. 천천히 글을 쓰거나 퇴고하면 이런 부분들은 세상에서 없어진다. 오늘은 남겨둬야겠다. 담벼락의 낙서도 소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을 자를 때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턴가 가위로 사각사각 다듬을 때 스르르 잠이 든다. 오후에 나른한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를 때마다 이발 소장님께서 몇 번 깨우기도 했다.(내가 일하는 곳에는 이발소가 있다)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란 소리에 선잠에서 깨지만, 사실 피곤해서 잠든 것은 아니다. 그 묘한 분위기가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를 수는 없으니 평생 누군가 잘라줘야 한다. 원빈도 스스로 잘랐데, 나도 같은 아저씨니까 한 번쯤 도전해야겠다.





 영화 "해피해피 브레드"를 보면 홋카이도 도야호 서측 능선 중턱에 있는 카페 '마니'의 테라스에서 아내가 엄청난 크기의 머리로 유명한 남편(오오이즈미 요 배역)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장면이 인상 깊다. 이상하게 내 머릿속에는 그 장면만 남아있는 것을 보니, 작은 로망인가 보다.

 멀리 보이는 잔잔한 도야코의 윤슬이 내 눈에 비치고 아내와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사각사각 다듬어지는 말끔한 머리, 맑은 홋카이도 공기를 한숨에 2천cc를 한번에 들이마시고 싶다. 

 한 번은 영화 속 카페 '마니'를 찾아 간 적이 있다. 당시 블로그나 여행 책자에 나와 있지도 않아서 영화를 되돌려 보고 구글을 검색하면서 어렵게 찾아갔는데, 모든 게 좋았으나 카페 사장님이 불친절해서 현실에서의 좋은 기억은 없다. 그냥 좋은 영화와 몇 장의 사진으로만 남겨두기로 했다.


 이쯤 되면 내 이상한 글쓰기 루틴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의식의 흐름이 이상한 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맥락을 찾으러 오는 시기가 된 것이다. 글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정신은 아직도 홋카이도에 가있다.




 여하튼,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손톱을 자를 수 있는 나이는 언제가 될까? 검색해 볼까? 아니다. 스스로 자르겠다고 할 때까지 그냥 두자. 다만, 네일 아티스트께서 몸 하나 거들기도 힘든데, 손톱 손질 명령 떨어지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으니 생각을 한번 물어봐야겠다. 그나저나 난 언제부터 혼자 잘랐지?


오늘부터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스스로 손톱과 발톱도 다듬고 생각 정리할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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