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보다 라떼 한 잔

도쿄_다시 쓰고 싶은 도쿄

by 혜남세아

도쿄 올림픽이 열린다. 어려운 상황에 무리해서 진행을 하는데, 선수들의 건강이 염려된다. 하지만, 전 세계 스포츠 선수들이 4년간 꾸준하게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인데, 그나마 코로나로 인해 박탈 당하는 아픔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둔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쌓아 올린 노력을 투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 중 한명으로 우리나라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여기서 좋은 결과란 금메달을 많이 획득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선수단이 건강하게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여 스스로에게 만족한 경기를 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함께 했으면 한다. 그것이 스포츠 정신이라고 배웠다.




내가 어렸을 적 나에게 일본은 적국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것은 아니고, 더구나 독립투사 집안도 아니며, 단지 광복 후 35년이 지난 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쪽발이', '니혼징', '빠가야로' 등 은어와 비속어를 섞어가며 강한 어조로 그들을 거부했다. 일본의 과거 만행에 대한 반감과 부모와 학교, 사회로부터 학습된 결과였을 것이다. 당시 사회적 통념상 일본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친일에 가까웠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학창 시절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몇 명 안 되는 친구들을 친일파라고 놀려대며 '이지매'를 부추겼던 기억도 있다. 그러면서 일본 문화의 상징인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는 인생 책이라고 말하는 무식하고 위선적인 삶을 지금껏 산다.


아쉽게도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해외를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대학 때까지는 형편이 좋지 않았고, 대학 졸업 후 바로 입대를 하다 보니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 서른두 살이 되던 해에 레바논 국제평화유지단에 선발되면서 최초의 해외여행을 '레바논 반년 살기'로 시작했다. 6개월간 파병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부여받은 20여 일간의 휴가 간 진정한 첫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그렇게 싫어하던 일본의 도쿄로 다녀왔다. 2010년 8월의 도쿄는 1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땀이 날 정도로 무더웠다. 레바논에서 귀국할 때 12시간의 장시간 비행으로 많이 피곤했고, 아내와 한창 연애를 시작하던 때라 가깝고 어디든 함께만 있을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지척에 있는 일본으로 결정했다. 모든 계획은 아내가 수립했다. 숙소와 식사, 관광과 교통까지 꼼꼼하게 계획서를 만들어서 도쿄의 중심지역 위주로 관광했다. 긴자, 지우가오카, 신주쿠, 아사쿠사 등 널리 알려진 곳으로 다녔다.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덥기도 했고 관광지 위주로 쇼핑에 집중하다 보니 여유 없이 이것저것 그들의 문화를 다양하게 접하면서 반감이 조금 사그라드는 정도로 첫 도쿄 여행을 마쳤다. 하지만, 그 후로 몇 년간 도쿄는 갈 수 없었다.




다음 해에 동일본 지진이 발생했고, 후쿠시마현과 근접한 도쿄는 부담스러워서 갈 수 없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홋카이도롤 눈을 돌렸는데, '북해도의 마성'에 빠져서 그 후로 연속 네 번을 다녀왔다. 다음은 간사이(오사카, 교토 등)와 규슈, 오키나와 등 도쿄를 제외한 일본 곳곳을 십여 차례 꾸준하게 여행했다. 기억 속에서 잊히던 도쿄는 몇 년 전 저가 항공권과 디즈니랜드의 유혹으로 다시 한번 찾게 되었다. 큰딸이 유니버샬 스튜디오와 디즈니랜드를 가고 싶어 해서 휴가 중 두 곳을 동시에 다녀왔는데, 아직도 큰딸은 그 일을 자랑하고 다닌다.



두 번째 도쿄 여행 때 첫날은 디즈니랜드만 갔고 나머지 일정은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가마쿠라와 하코네를 여행했다. 가마쿠라는 '바다 마을 다이어리' 촬영지와 '슬램덩크'의 배경지이고, 하코네는 온천을 좋아하는 내가 마음에 드는 온천 사진을 본 뒤 너무 가고 싶어서 적극 추진했다. 여행지는 모두 좋았다. 온천도 바닷가도 슬램덩크의 윤대협이 나온 능남고등학교까지도 눈에 속속히 들어왔고 아쉬운 마음에 지나치는 풍경들을 사진 속에 가두고 추억으로 남겼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일본 블루보틀 1호점에서 마신 라떼였다. 당시는 블루보틀이 국내에 없어서 디즈니랜드 가는 길에 시간내어 찾아 갔는데, 그 라떼의 맛에 빠져서 국내 1호점 입점 당시 성수동에 줄 서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그후로 지금까지 국내에 들어온 블루보틀 전 매장을 돌아다녔다. 블루보틀에만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스타벅스 열 번 갈 때 한번 정도 가는 수준이다. 최근 오픈한 코엑스 팝업 스토어는 코로나가 조금 나아지면 방문 할 예정이다.



두 번째 도쿄 여행 당시 처음 3일은 오사카에서 놀다가 일본 국내선을 타고 도쿄로 이동했다. 3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도쿄에서 우리나라로 귀국할 때도 하네다와 나리타 공항을 이용한 것이 아니고 이바라키에 있는 작은 공항과 저가항공사를 이용하여 개인당 2만 원 정도의 비행기표를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나에게 도쿄는 디즈니랜드도 아니고 아사쿠사나 긴자도 아니다. 도쿄 주변에 있는 가마쿠라와 하코네, 그리고 저렴했던 항공권 정도로 남아있다. 게다가 여행지를 복수로 선택해서 여행하는 방법과 여행 일정 중에 이틀 정도는 놀거나 관광을 하고 하루 휴양하는 패턴을 정착시켜주기도 했지만, 가장 크게 머리속에 인식 시켜준 것은 그곳에서 맛 본 '라떼 한 '이었고, 그 맛에 빠져 오랜 시간을 허우적 거리게 만들었다.




도쿄 올림픽이 막 시작했다. 당장 달려가고 싶다.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거나 천혜의 노천탕 풍경, 버라이어티 한 디즈니랜드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내가 도쿄에 가고 싶은 단 하나의 이유는 단지 '라떼' 한 잔을 마시고 싶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는 그 맛을 가까운 곳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