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향 그리고 맛의 향연 스끼야끼

교토의 맛을 그대로 전해 준 음식

by 혜남세아

교토를 좋아한다. 고즈넉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일본의 오래된 도시이다. 우리나라의 경주와 부여의 느낌과 비슷하다. 유명한 관광지가 많다 보니 항상 관광객이 넘쳐서 낮에는 시끌벅적 하지만 해질녘 가모 강변이나 중심가에서 한 골목 벗어난 조용한 거리들은 교토의 진정한 매력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교토를 생각하면 그곳에서 처음 만난 스끼야끼가 생각난다. 색과 향, 그리고 맛까지 완벽한 조화로움에 입가득 침이 고인다.


스끼야끼를 보면 불고기가 생각난다. 그런데, 불고기는 선호하지 않아서 늘 매국노가 되는 기분이다. 불고기와 스끼야끼를 굳이 비교한다면, 떡볶이와 즉석떡볶이 같은 느낌이다. 떡볶이는 주방에서 만들어 나오는 음식이라면 즉석떡볶이는 식탁에서 조리하여 먹는다. 스끼야끼와 불고기는 들어가는 재료도 비슷해서 과거 못된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훔쳐가서 자기네 것인 양 자랑하는 못된 습관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동쪽나라보다 서쪽나라에서 그 짓을 더 잘하는 것 같은데, 내가 시시비비를 가릴 것 없이 그냥 교토가 생각나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가볍게 정리하고, 혹시 문제점이 발견되면 내 무식을 탓하면서 다시는 먹지 않을련다. 어차피 세상에 먹을 것은 널려있다.




스끼야끼를 처음 안 것은 십 년전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를 여행할 때였다. 백 년된 유명 스끼야끼 식당을 방문하려 했으나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서 근처의 맛있고 저렴함 햄버거 가게로 변경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잊고 살다가 국내에서 가끔 스끼야끼를 발견하면 로바다야끼나 이자카야처럼 일본 음식점 중에 하나로 인식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몇 년전 교토를 여행할 때 '스끼야끼는 반드시 맛 봐야 할 음식'이라는 문구를 보고 계획에 포함시켰다. 함께 추천한 유명한 메밀소바와 스끼야끼는 꼭 먹어보자란 생각으로 여행의 초점을 음식에 맞췄었다. 수백 년 된 식당 본점에서 먹었던 메밀소바는 밍밍하고, 특색이 없어서 기억에 남는 게 없는데, 일본어 실력이 부족해서 본점 예약을 못하고 백화점에 있는 직영점에서 맛 본 스끼야끼는 첫 고기가 입에 들어가는 순간을 지금까지 기억할 정도로 강렬했다.


스끼야끼를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선 순간 분위기는 칙칙했다. 우리나라 경양식 집 같은 분위기에 손님도 별로 없어서 한적했다. 식탁에 앉아서 메인 메뉴 2인분을 시켰다. 정확한 가격은 생각나지 않지만, 은근히 비싼 가격이였다. 일본 음식은 전반적으로 가격이 불편하다. 직원이 고기와 야채를 싸들고 와서 철판에 설탕을 먼저 뿌렸다.


"뭐 하는 거지?"



음식에 대한 정보가 없이 방문한 나는 단맛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설탕을 뿌리는 행위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와 딸은 "와 맛있겠다"를 음식이 만들어 지기 전부터 외쳤다. 설탕이 사르르 녹자 야채와 고기를 볶기 시작하는데, 육즙과 채즙이 버무려지면서 그럴싸한 모양이 완성됐고, 친절하게 계란을 쪼개어 노른자로 만든 소스에 고기를 얹어줬는데, 방금 전까지 붉은색과 흰색이 기묘하게 섞여있던 얇은 소고기가 적당하게 잘 익은 차돌박이처럼 보였다. 젓가락을 들고 '아리가또'라 말하며 한 점을 입에 집어넣었다. 간장과 설탕, 계란 노른자에 고기의 육즙과 익힌 채소의 맛까지 조화롭게 혀에 닿는 순간 감탄은 하고 싶은데, 뜨겁기도 하고 계속 먹고 싶어서 괴상한 소리만 질러댔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은 맛을 보고 있던 눈앞의 모녀는 서로 먹겠다고 싸우는 것 같이 보였다.




그렇게 첫인상이 좋았던 터라 우리나라에 돌아온 다음에도 여러 번 스끼야끼를 찾으러 다녔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먹은 것 같다. 국물요리로 나오는 곳도 있었고, 불고기와 비슷하게 나오는 집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교토의 그 맛은 아니었다. 그러다 자주 가는 일식 식당 앞에 조용한 분위기의 스끼야끼 집을 발견했다. 밖에 나와있는 메뉴를 보니 맛있어 보이기는 하나 교토의 음식 가격을 따라한 것 같아 불쾌한 마음에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교토의 맛이 그대로 전해질 것 같은 분위기였고, 고급스러우며 깔끔한 분위기라 당장 들어가고 싶은데, 저녁식사는 적절하지 않다고 뇌에서 거부하여 다음에 점심식사를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주 점심때 식당을 다시 찾았다. 결론을 먼저 얘기한 다면 스키야끼는 교토 맛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나이를 조금 더 먹어서 맛에 대한 생각이 보다 깊어졌음에도 스키야키는 현지의 맛을 고스란히 가져오다 못해 능가한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작은 카스텔라 조각 두 개가 들어가 있는 샐러드와 차왕무시는 검증된 스시집의 오마카세 수준보다 우월했다. 특히, 차왕무시의 식감은 메인 요리를 먹고 싶어 안달 나있는 우리를 달래 줄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했다.



이때 스끼야끼 집의 씬스틸러가 등장한다. 일본 맥주는 많이 마셔봤는데, 처음 본 상표였다. 에일보다는 라거를 선호하는 편이라 고민하다가 주문했는데, 직원께서 예쁜 전용잔에 거품을 한껏 올려서 따라 줬다. 조금 남아있던 차왕무시와 곁들이니까 환상의 페어링을 느꼈고, 오픈 주방에서 접시를 닦고 있는 사장 추정 인물을 연신 쳐다보게 만들었다. 음식과 술의 페어링을 이렇게 까지 잘 맞춘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지만, 보잘것없는 내가 고급 음식점 사장님을 불러 경의를 표명하면 어이없는 상황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고려하여 꾹 참았다.



한참 맥주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정신을 차리는 순간 종업원이 고급스러운 식기구와 화려한 색깔로 구성된 요리 재료를 들고 내 옆에 와 있었다. 그다음 장면은 교토에서 있었던 상황과 흡사하다. 색, 향 그리고 맛까지 모든 것이 조화롭게 다가왔고 마치 그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다.



디저트는 팥이 올라간 녹차아이스크림이 나왔는데, '적당히 즐겼으면, 입가심하고 돈을 내'라고 나에게 외치는 것 같았다.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은 제의였다.





조리하고 맛보는 내내 아내의 표정은 생일에 명품 시계를 선물 받았을 때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 역시 '돈이 아깝지 않다'라며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무엇보다 코로나 상황으로 교토를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스끼야끼를 만나는 동안 교토가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빛을 나눠준 별과 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