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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Aug 21. 2021

초록초록 초로록




'빨 주 노 초록 파 남 보'


 요즘 하늘이 좋다 보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삶에 지쳐 하늘을 볼 시간이 없다며 여유를 자고 격려하면서 늘 좀 보면서 살자고 했는데, 이제는 매일 하늘을 보며 사진을 찍어 기록에 남기고, 인스타 피드에 멋진 하늘사진이 도배를 하고 있다. 아직 열대기후로 바뀌진 않았지만 고기압의 영향이 지속되고 지표면이 국지적으로 데워지면서 적란운이 많이 형성되어 하늘에는 '진짜 구름'이 여기저기 걸쳐있다. 그 사이로 일곱 빛깔 무지개도 조심스럽게 자주 등장한다. 급격하게 데워진 지표면에 의해 공기 중에 수증기량이 증가될 때 빛의 굴절 현상으로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우리 눈에 나타난다. 기상청에서는 무지개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별도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기상현상 중 가장 아름다운 현상인데, 예보는 할 수 조차 없고 발견되는 장소에 따라 위치도 다르며, 고도나 빛의 세기에 따라 순간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빛의 굴절 현상인지 태양 빛에 부끄러워서인지 모르겠지만 무지개는 아침에 서쪽에서 보이고 해 질 녘에는 동쪽에서 슬그머니 출현했다 소리 없이 사라진다.



 무지개의 초록은 빨강과 보라 가운데 존재한다. 무지개 중앙에서 다른 색깔들이 더 이상 산란되지 않도록 가운데서 꼭 붙잡는다. 특히, 빨강과 주황 사이 어린 분홍과 바로 옆을 지키는 노랑이 넓은 하늘 밖으로 흩어져 나가지 않도록 두 손으로 꼭 붙들고 있는다. 초록은 보라가 빨강까지 가는데 지치지 않게 중간에서 쉴 수 있도록 편안한 장소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초록은 여름의 색이다. 녹음이 시작되는 유월부터 푸른 나무와 울창한 숲이 우거지기 때문에 초록이 많이 그려진다. 여름의 절정은 칠팔월이라 바다와 하늘을 상징하는 파랑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다. 푸른 바다나 푸른 하늘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때 푸른은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란 뜻으로 결국 초록은 파랑을 집어삼킨다. 그래서 여름은 초록이다.



 초록은 눈을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짙푸른 계절에 색깔이며, 육군을 상징하는 색이다. 왜 좋아하는지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색깔 중에 좋아하는 하나를 선택하라면, 초록을 선택했다. 아마도 어려서 어머니가 초록을 좋아한다는 말을 많이 해서 학습효과로 머릿속에 인식되었을 수도 있다. 우리 집 둘째가 노랑을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초록이 없다. 걸려있는 옷 중에도 없고, 신발이나 가방, 액세서리 중에도 초록은 보이질 않는다. 자동차도 흰색이다. 그러고 보니 초록차를 본적이 없다. 얼마 전까지 사용하던 펜이 초록이었는데, 잃어버려서 이제는 눈앞에서 초록을 찾을 수가 없다. 유니폼도 초록에서 회색 계열로 바뀌었다. 창밖은 온통 초록인데, 가까운 곳에 없는 이유를 모르겠다. 길을 걷다가 짙은 초록 원피스를 입은 사람을 보면 눈이 가는데, 함부로 쳐다볼 수는 없다. 잘못하면 이상한 아저씨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슬쩍 신호등 보듯이 지나친다. 그러고 보니 신호등도 초록이다. 용기 내어 초록 옷을 입어 보고 싶은데, 아직까지 초록 옷을 입고 다니는 아저씨는 본 적이 없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유재석이나 노홍철이 입긴 했는데, 연두와 형광으로 불리는 밝은 계열로 내가 좋아하는 짙은 초록과 다르다. 여름이 끝나면 더 입기 어려울 텐데, 용기를 한번 내야겠다. 단지 초록색깔 티셔츠 한번 입는데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초록은 분홍과 노랑을 지켜주고 힘든 보라가 분홍과 노랑을 찾아갈 때 쉴 수 있게 해 주며, 더운 칠팔월까지 삼켜버리는 유월에 어울리는 색이다. 눈을 편안하게 해 줘서 오래 지켜볼 수 있는 초록이 좋다. 나와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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