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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Sep 02. 2021

간호사 선생님과 간호사

불편한 호칭 정리에 대해서


"간호사, 간호사 빨리 오세요!"

"네. 의사 선생님"


휴일 낮 거실에서 두 딸이 병원놀이를 다.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던 내 귀에 들리는 두딸 말이 거슬린다. 아내는 전화를 계속하고, 집에 계신 어른들도 각자 일을 하며 지나친다. 텔레비전에서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가 나온다. 때마침 소아과 의사인 유연석이 환자 부모와 대화를 한다.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휴.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은 정말 짧은 시간에 간단한 몇 개만 했을 뿐입니다. 저보다 며칠 동안 아이를 보살피고 지켜주셨던 분들 덕분에 나을 수 있었던 겁니다. 감사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받아야죠."


 아내는 계속 전화를 하고, 아이들은 연신 병원놀이를 한다. 두 상황이 겹쳐지면서 내 머릿속에 잠시 멈춰있던 말은 간호사 선생님이었다. 선생의 순우리말은 스승이고 통상 전문직을 하고 있는 사람을 높여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하긴, 지나가는 중년 아저씨를 부를 때도 선생님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유독 우리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간호사 선생님이라는 말보다는 간호사라고 부른다. 가끔 아가씨라고도 부른다. 아가씨가 나쁜 말은 아니지만 부르기 편해서라면 변명이다. 의사 선생님이 바로 옆에 계실때 아가씨를 찾던 진짜 아저씨는 너무 쉽게 선생님이라는 고귀한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간호장교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간호사만 외쳐댄다.



 무엇이 중요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따지려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의사와 간호사를 구분하려는 것도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역할에 따라 호칭을 다르게 말하는 게 불편해졌다. 가끔 후배가 "사모님은 요즘 잘 지내십니까"라고 물으면 난 단번에 "나 사장님 아닌데, 왜 사모님이라고 불러 불편해"라며 손사래 친다. 통상 상급자 가족을 칭할 때 높이기 위해서 하는 말인데, 후배와 사이가 멀어지는 게 느껴져서 다시 정리해준다. "형수나 가족분 정도로 말해주면 안 되냐?" 가깝게 받아들이는 후배는 형수라 하고 대부분은 가족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된다. 이 역시 나만 불편해하는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얼마 전 인접 부서의 삼십 년 정도 복무한 원로분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요즘 나이 어린 상급자 분들이 자신과 동료에게 너무 하대를 해서 불편하다는 말이었다. 나와 관계가 좋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잘 얘기해달라는 뜻으로 말했는데,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직접 교육하는 것보다 내가 원로분을 대할 때 존칭을 명확하게 쓰는 것으로 간접 교육을 하고 있다. "김 아무개님 이것 좀 몇 시까지 해주세요"라며 평소보다 목소리를 높이면서 부탁조 지시를 많이 한다. 님자를 꼬박꼬박 써가면서 계속 하고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계속 시도하있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직 특성과 문화가 사회와 다르다 보니 누구를 탓할 수는 없지만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서 간호사의 애환이 많이 알려지고 인식이 조금 나아졌다. 간호사는 의료인으로 전문지식을 통해 환자를 보살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드라마 속 멋진 유연석 의사 선생님처럼 우리 아이들도 병원 놀이할 때 자연스럽게 간호사 선생님이 나올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가끔 들르는 병원에서 간호사를 마주한다면 가볍게 선생님을 뒤에 붙여주는 게 어떨지 제안해 본다. 다 사람 사는 곳이다.


딸들아 까불면 혼난다


지금도 코로나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어렵게 임무 수행하는 간호사 선생님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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