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려주는 마법 버튼

by 혜남세아




휴일 나른한 오후 아내와 호수공원을 산책하다가 커피를 한잔 마시러 카페에 들렸다. 내려마실 수 있는 리저브라 그날 좋은 원두를 선택하여 조금 더 천천히 내려주는 커피로 한잔 주문하고 아내는 아포가토 같은 종류의 콜드 브루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섞인 음료를 주문하고 거대한 공용 테이블에 앉았다. 넓은 창으로 공원이 보였는데, 강아지와 산책하는 가족, 달리기를 하겠다고 트레이닝복으로 한껏 멋 부린 젊은 연인, 괴상한 연을 날린다고 달려가는 사내아이, 잠시 지쳐서 분수대 옆에 앉아있는 할머니, 분수대에서 물에 온 몸을 젖시며 까르르 웃는 여자아이와 옷 젖는 걸 걱정하다가 포기했지만 행복해하는 아이 엄마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부부의 모습까지 액자 속에 포함되어 있는 멋진 오후였다.


아내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참 나눴고, 아내는 레시피북을 작성하고 나는 최근에 읽은 책 서평을 쓰기 위해 아내 키보드를 빌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써내려 가면서 맘에 들지 않은 문장을 작성하면 지우려고 del(_키를 눌러야 하는데, 델키를 한 번에 누르지 못하고 fn(펑션) 키와 함께 누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보통 델키와 back space(백스페이스) 키를 사용하여 내용을 지우는데, 하나만 작동이 어색해지니까 계속 거슬렸다. 게다가 펑션키를 누르지 않은 상태에서 델키를 누르면 화면 캡처를 해주는 매우 유용하지만 나한테는 전혀 필요 없는 기능이 연신 작동됐다. 서평이 끝났을 때 확인하니까 한글문서 자동 저장 기능처럼 화면 캡처만 21번이나 되어 있었다. 비슷한 기능이 두 개나 있는데, 하나가 없다고 불편해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델키와 백스페이스 키는 비슷한 역할을 한다. 둘 다 영어니 어원을 따지면 delete는 삭제하다는 동사이고, back space 공간을 뒤로 돌린다는 의미의 합성어이다. 문서작업을 하다 보면 둘을 비슷하게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비슷하게 인식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델키는 커서는 가만히 있으면서 먼저 작성한 앞에 있는 문자를 끌어들여서 삭제한다. 백스페이스는 커서가 움직이면서 이미 쓰인 문자를 지우거나 앞에 있는 내용을 같이 끌고 온다. 쉽게 말하면 앞에 있는 문자를 지우느냐 뒤에 있는 글자를 삭제하는 차이가 있다.


조금 의미를 부여한다면 델키는 앞으로 그려질 것들을 불러들여서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든다. 백스페이스는 과거에 작성된 것을 되돌아가면서 하나씩 지운다고 볼 수 있다. 지우는 행위는 비슷한데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되돌아가는 의식을 하는 백 스페이스키가 조금은 더 매력 있는 것 같으면서 잘못 그려진 미래를 불러들여서 삭제하고 다시 써내려 갈 수 있게 하는 델키도 블랙홀 같은 매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난 공간이라는 말을 좋아하다 보니 스페이스란 단어에 조금 더 매력을 느낀다. 많은 추억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예전 세상으로 돌아가거나 우주여행을 하는 느낌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꼰대 기질이 있어서 회상을 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함께 없어도 되는데, 굳이 꾸역꾸역 만들어서 아스키코드 8번과 127번으로 정해놓은 것을 보면 더 심오한 뜻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잘 모르겠다. 단지 하나가 없을 때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내게 둘 다 필요한 존재인가 보다. 그래도 이왕이면 미래를 잡아먹는 녀석보다 과거를 회상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버튼이 조금 더 매력 있게 느껴진다. 마법의 버튼을 이용하여 가끔 내 잘못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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