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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Feb 02. 2018

날개에 대하여

67화

사람에겐 자유가 있어서 행복하지만 같은 이유로 슬프다. 그래서 나이에 따라 행복의 이유가 다른 게 아닐까 싶다. 어릴 땐 부모의 그늘 아래서 혼나면서 울면서 크는 게 행복이기도 하지만 청년 시절엔 규율 없이 마음대로 하는 게 행복하고 나이가 들면 여럿이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에게 정착해서 그 사람과 살고 싶어 하는 거. 얼마 전부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겐 저마다 날개가 달려있는데, 덕분에 사람들은 힘이 닿는만큼 멀리멀리 날아 가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날개라는 건 능력이 될 수도 있고, 타고난 재능이나 노력으로 이룬 성과, 누군가에겐 외모나 매력일수도 있다. 연인이 될 땐 서로의 날개에 반한다. 너무 아름답고 멋져서 불면 날아갈까 안으면 부러질까 조마조마하면서 서로 사랑하지.


하지만 사랑이 더 오래가기 위해선 상대의 날개를 직접 꺾어야 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같은 날개를 가져서 같이 날아다닐 수 있는 사랑이라면 좋겠지만, 저마다 조금씩은 다른 모양의 날개를 가지고 있기에 우린 정말 꼭 맞아, 라고 해도 그 때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의 날개도 변하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이제, 한 때는 등 뒤에 달고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어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던 이 날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에 방해가 되는 이 날개를. 지난 달에 비행기를 타고 14시간을 날아 미국까지 다녀왔는데, 하늘을 보면서 같은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이 날개를 어떻게 해야할까. 결국에는 꺾여야 하지 않을까. 속상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좀 더 고민해봤다. 실은 처음에 날개에 대해 고민하면서 내가 내렸던 결론은 날개를 기꺼이 잃을만큼 누군갈 사랑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과정으로, 서로가 반했던 날개를 꺾어야 관계가 지속되는 것 같다고. 그러나 이건 내 마음이 너무 높아서 했던 생각이었다. 나에겐 날개가 없다.


나에겐 날개가 없고, 대신 볼품없이 마르고 연약한 육체와 정신 뿐이다. 언젠가 멀리 날아갔던 건, 그건 그냥 사랑해서 힘이 넘쳤던 것. 날개는 원래 없었는데, 없는 날개를 잃어버릴까봐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매번 사랑할 때마다. 이별할 때마다. 좀 더 강인한 마음을 갖고 싶은데 나이가 들면서 나 자신으로 혼자 강인해지는 법을 자꾸 잊어버린다. 나에게 무언가 있다고, 비밀스런 초능력이라도 있는 것 마냥 착각한다. 있는 날개도 떼어버려야 살아질 인생을, 왜 자꾸 다른 무엇에 의지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다행히 나는 날개 없이도 충분히 행복하다.


2월이다. 뭐라고 할까. 믿어지지 않아서 조용히 곱씹어본다. 시간을 느껴본다.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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