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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Feb 14. 2018

달리기

68화

책방 분위기를 바꾸느라 일주일동안 육체노동을 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잘 하지 못했지만, 어릴 때 나는 방 구조를 혼자 바꾼다거나 청소를 하려고 며칠씩 방을 다 뒤집은 적이 많았다. 책상을 방 한가운데에 두거나, 침대를 삐뚤게 둔다거나 하는 중2병 인테리어를 시도하면서 열심히 탐구했지만 얻어진 것은 함부로 대청소를 시도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이었다. 공간을 바꾸는 일은 나같은 사람에겐 가볍게 시도해서는 안 될 일 중에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에는 놀라운 재미가 숨겨져 있다는 걸 안다. 아무리 엉망진창인 공간도, 쓰레기 하나를 봉투에 집어넣는 것으로, 조만간 깨끗해진다는 거다. 할 수 있는 일은 쓰레기를 하나 주워서 봉투에 넣는 것. 혹은 물건을 하나 주워서 제자리를 찾는 것. 이것만 수천번 반복하면 공간은 깨끗해진다. 달리 획기적인 방법도, 참신한 시스템도 없다.


며칠 육체노동으로 다져진 몸으로 정신노동을 했더니 이번주는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흔치 않은 일이라서 궁리하다가, 퍼블리에 매달 구독료를 내면서 얼마 읽지 못한 것 같아 <케냐의 마라토너는 천천히 뛴다>라는 컨텐츠를 한 번 읽어보았다. 나는 달리기를 싫어하지 않지만,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목적도 없이 그냥 몇 키로를 뛰는 건, 물론 간지가 나는 일이지만, 모두들 그 간지를 탐한다면 그것 또한 간지가 안 나는... 오묘한 간지의 세계가 아니겠나. 그럼에도 어쨌든 나는 달리기에 관한 한 강렬한 한 경험이 있다.


아마 그 날도 내 고등학교 자퇴 시절의 대부분이 그렇듯, 나 자신에 대한 의심과 내 주변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극심한 혼란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던 날이었다. 문득 나가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거의 입지 않는 추리닝 바지를 옷장 제일 구석에서 꺼내는 일부터, 몇 번이나 왜 뛰러 나가야 할까 질문했지만 달리 할 일도 없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마음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색이 전혀 맞지 않는 차림과 뛰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집을 나섰다. 달리기에 좋은 길이 집에서 십 분 여 걸어가야 있었는데, 집을 나서면서부터 뛰기 시작했다. 날씨는 오월 혹은 구월 쯤. 적당한 쌀쌀한 오후였다.


한강까지는 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앉을 바위를 찾는 것도 힘들었다. 털썩 앉아서 온 세상이 거의 노랗게 보일 지경이었으나 가만히 땅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바라보다가 하며 숨을 쉬었다. 대략적으로 기억을 더듬어 계산해보면, 뛴 거리는 총합 5키로미터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거리다. <한강까지 00KM>라고 적힌 바닥의 하얀 글씨를 보았다. 그리고 가만히 눈물이 났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고, 눈물이 나서 너무 기분이 이상했다. 가끔 나는 일상의 사건이 상징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날도 그랬던 것 같다. 별 다른 이유는 없지만 강렬한 충동과 의지에 이끌려 뛰기 시작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지치고 힘들어서 주저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아마 인생에서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여튼 주변에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다 대단해보였고, 다 날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기분으로 눈물이 났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열심히 뛴 게 멋지다고 스스로 칭찬하는 기분이 더 컸다. 스스로는 칭찬할만한 일이, 남들에겐 너무 보잘 것 없는 일이라 그게 슬펐나보다. 그리고 내가 걸을 수 있는 가장 느린 걸음으로, 내가 느껴본 가장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모든 걸음이 너무 힘겨운 가운데, 집으로 향했다.


<케냐의 마라토너들은 천천히 뛴다>를 읽으면서 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큰 건 이거였다. 세상에서 달리기를 제일 잘 하는 사람들은 매일 세상에서 달리기를 제일 잘 하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에만 그렇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달리기를 잘 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란 열심히 뛰는 것도 포함되고 열심히 쉬는 것도 포함되고 열심히 뛰지 않기 위해 열심히 참는 것도 포함된다. 신기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느낀 다음 나는 달리고 싶었다. 이게 더 신기한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어른이 되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을 해왔기 때문이다. 못하는 건 그냥 포기해야만 했다. 달리기는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도전이었다. 그런데 달리기에서도 내가 잘 하는 게 있었다. 나는 아마 누구보다 천천히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들 걷는 것보다 더 천천히 나는 뛸 수 있다. 나는 몸이 작고 다리도 짧고 아무튼 달리기 못 할 요소는 많으니까. 그런데 어쩌면 그게 달리기를 잘 할 요소가 될지도 모르는 거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어제는 요가 간 쓰레기가 되기 위해서 일과를 마치고 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평소처럼 달라붙는 스타일의 요가복을 입으려다가,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편한 옷으로 바꿔입었다. 그리고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뛸 수 있는 가장 느린 속도로 뛰었다. 나의 도전이 기특했는지, 서울의 밤공기는 글을 읽으며 내가 상상했던 케냐 이톈의 새벽 공기와 비슷한 느낌으로 나를 감쌌다. 그런 게 좋다. 아무나 잘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하기만 하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 두 다리가 감사한 밤이었다.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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