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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Dec 02. 2017

기억의 빈자리

66화

느릿느릿 일상의 기록을 이어나간다. 어제 밤에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을 봤다. 그 장면은 하나도 슬프지 않기 때문에 너무 슬프다. 영화관에서 그 장면을 보며, 앞으로 인생은 나에게 행복을 되새길 때마다 깊은 슬픔을 선물할 거란 사실을 배웠다. 기쁨은 필연적으로 슬픔을 가져온다.


그러고 잠을 자서인지,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다가 인생이란 한 편의 이야기를 쓰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자신의 성공신화, 실패담, 연애 스토리 같은 이야기를 쓴다. 아주 긴 이야기를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인생은 아주 짧고 간단하고 명료한 인생일 것이다. 아마도 내 이야기는 아주 긴 편에 속하겠지. 아주 지루하고 지지부진 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은 재밌었으면 좋겠다. 긴 이야기를 읽는 수고가 좀 덜어지도록.


나는 가끔 보면 해피엔딩에 중독된 사람 같다. 생리 중이거나 일상이 무너질 때마다 내가 탐닉하는 게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든 만화책이든 소설이든, 마지막에 주인공이 말도 안되게 잘 되는 이야기. 그리고 우울감이 가실 때까지 마지막 장면을 되풀이 해서 본다. 단순하고 원초적이지만 해피엔딩을 목격하는 건 너무 즐겁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거다. 그게 꼭 자신의 해피엔딩 같아서.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결혼식도 마찬가지로, 기쁜 순간에 인생이 끝나진 않는다. 반대로 끝난다면 그렇게 비극일 순 없는 거다. 삶은 언제나 계속된다. 죽은 사람에게도, 남은 사람에게도, 떠난 사람에게도, 버려진 사람에게도.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결말을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한다.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냈다가,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다가, 더 이상 결말을 예측하지 않기로 했다가, 다시 욕심을 내는 것으로 반복하곤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결말이란 한계 같은 느낌을 준다. 여기까지, 라는 말은 꼭 그런 인상을 주듯이 말이다. 한계구나, 하는 듯한.


살면서 여기서 끝나면 딱 좋겠다, 싶었던 순간이 몇 번쯤 있었다. 고등학교를 그만둘 때가 그랬고, 첫 연애를 시작했을 때가 그랬고, 해피엔딩에 중독된 사람답게 대부분 행복한 순간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거기가 내 행복의 한계점인 듯이. 최근에는 좀 달랐다. 한참 지났는데,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는 걸 깨달은 기분이었다. 모든 중독이 그렇듯이, 나의 이 중독도 끊어내야 하는 때가 온 기분이었다.


앞으로 나는 행복할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단 하루라도 더 오늘처럼 행복할 수 있다면 어떠한 슬픔도 두렵지도, 아깝지도 않다고. 혹시 이게 진정한 해피엔딩 중독자의 자세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점점.



p.s. 나얼의 새 노래에서 제목을 따 왔다. 나는 가끔 좋은 노래가 있다는 걸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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