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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Nov 26. 2017

커피를 마셨다 2

65화

아침에 카카오톡 오는 소리가 들려 잠시 깼다. 커피 주문을 받는다는 말에 나는 거의 잠든 상태로 뭘 마실까 고민했다. 아침이니까 아메리카노를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잠결에 대답을 남기고 다시 잠들었다. 오늘은 우리 책방에서 1년이 넘도록 진행중인 독서모임이 있는 날. 여느때처럼 헐레벌떡 일어나서 정성스레 단장하고 허둥지둥 뛰어갔더니, 오랜만에 보는 두 멤버가 빨리 안오냐며 반가워해주었다.


따뜻하고 고소한 커피를 마시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문득 생각이 났다. 책으로 인연을 이어간다는 건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니다. 섬과 섬 사이에 나룻배를 두는 것과 같다.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한 척의 책이 있어서 우리는 물자를 주고 받듯이 책 속의 문장을 주고 받고, 내가 이해한 바를 담아 보내면 저 쪽에선 내가 생각지 못한 내용이 담겨져 오는. 서로의 마음을 나눌 뿐인데 가치가 창출되는 신기한 무역의 세계인 셈이다. 다리를 건설하듯 억지스럽거나 직접적이지 않고 유리병을 띄우듯 막막하지 않으니, 사람들 사이에 알맞는 거리를 위해서 책이 더 많이 필요하다.


얼마 전에 '적당하다'라는 말이 나쁜 뜻으로 쓰이는 예를 접했는데, 아주 짧은 순간이었겠지만 기억해두었다. 사람들은 적당한 게 좋은 줄 안다. 뭐든 적당히가 어렵고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뭔가를 적당히 하는 건 자주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 애초에 적당히라는 말은 적음과 많음 사이의 어떤 지점을 말하는데, 사람들이 '적당히 하면 된다'라고 말할 때 그 일의 많고 적음을 가늠하지 못한 채로 그런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적당히 하면 된다고 말하려면 공부를 적게 하는 것과 많이 하는 것의 기준치가 있고 그 사이에서 나름의 기준을 가진 사람만 여기가 적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많이 한다고 생각할 땐 적게 하기 위한 핑계로, 적게 하고 있을 땐 그 게으름을 합리화하기 위해, 적당히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거다.


적당히 하고 싶지 않다. 대부분의 일에. 어쩌면 내가 적당히 하는 센스가 부족한지도 모른다. 그건 두번째고, 적당히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첫번째다. 적당히 살고 싶지 않고, 적당히 하고 싶지 않다. (이쯤되면 '적당히'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적당하다는 말은 매우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약간, 살짝, 조금과 같은 표현은 적다라는 범위 안에서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는데, 적당하다는 건 많다는 건지 적다는 건지 당최 가늠이 불가능한 말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얼만큼 하는지도 모르면서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할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사람들 사이에는 알맞는 거리가 필요하다. 알맞는 거리란 어떤 기준에 꼭 맞는 거리라는 뜻이다. 설탕 두 스푼이면 설탕 두 스푼이 알맞는 양일 것이다. 다른 계량기를 이용해도 설탕 두 스푼이면 된다. 그건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다. 사람들 사이에 적당히 거리를 둔다는 말은 싫은 사람을 되도록 멀리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엔 모두 알맞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알기 위해서는 가까워져보고, 멀어져도 보면서 알아차려야 한다. 파도가 오가듯이 오가는 나룻배를 통해 지금 어디쯤에 와 있구나, 하면서 깨닫는 것이다. 어느 지점이 되면 우리 사이가 참 자연스럽다는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겠지. 그 곳에 오래 머물고 싶다. 그러면 우리는 아주 알맞게 외로울 것이다.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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