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사실은(나는 꽤 많은 글을 이 말로 시작한다. 그건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이라는 뜻이다) 얼마 전에 갯벌에 다녀왔다. 오후 다섯시 쯤 바라본 갯벌은 몹시 아름다웠다.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조개도 캐고, 머드팩도 하고 그렇게 평화롭게 노는 풍경. 저 멀리 수평선 가까이에도 개미만큼 작은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문득 승부욕이 올라서, 제일 멀리 간 사람들보다 더 멀리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갯벌 고행'이 시작됐다.
아주 오래 걸었다. 앉으면 내 엉덩이에 깔려 죽을 작은 생명체들이 많았다. 쉬더라도 잠깐 서 있을 뿐, 의자도 기댈 벽도 없는 완전한 광야. 제일 멀리 나간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저기까지 간 건지.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걷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꾸준히 걸어갔다. 꼭 잡은 손을 지팡이처럼 의지했다.
목표는 바다가 시작되는 곳. 어디 쯤엔 분명 바다일테니, 거기까지 가보자는 포부를 안고 있었다. 나는 말로 하면서도 상상할 수 없었다. 갯벌의 끝은 어떻게 생겼지? 바다의 경계는 어디인지? 아무튼 지도상으론 이미 육지에서 한참 떨어진 파란 바다 위였으니, 적어도 바다가 시야에 들어올 때까진 걸을 요량이었다. 아직도 한참 더 남아있었다.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는 왜 조개를 따지 않느냐고 물었다. 마침 조개줍는 사람들이 너무 바보같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안개와 흐릿한 햇살 속의 드넓은 갯벌. 보드라운 머드에 발목까지 담그고 천천히 걷는 기분.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허물어진 하얀 빛.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공기. 이따금 부는 바람만 시원하고. 이 모든 완벽한 여름 휴가를, 죄다 조개 잡느라 놓치고 있으니까 말이다. 실상 거기는 사진도 정말 멋지게 나오는 곳이었는데 전부 쪼그리고 앉아 삽으로 머드만 퍼내고 있었다. 가여운 조개와 물고기와 게들을 잡기 위해서..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풍경에 감탄하며, 삶에 심취해서, 결국은 제일 멀리 갔던 한 가족보다 더 멀리 나왔다. 거기엔 완전한 풍경에 두 가지 아름다움이 더 추가되었다. 걸어오는 동안 내려앉은 노을 빛의 반짝거림과 파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바다의 시작은 곧 파도가 시작되는 곳이다.
마치 저 멀리에서 누군가 돌을 던진것처럼 잔잔한 물결이 육지를 향해 오고 있었다. 끊임없이 부지런히, 어떠한 메세지를 전달하듯이 아주 부드럽게. 누군가가 걸어오듯이 커다란 원 수천개가 파동이 되어 번졌다. 모스 부호처럼 파도가 치는 풍경. 노을은 아주 얕은 바다에 길고 좁은 빛의 길을 그려서 더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꾸준함으로만 획득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