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에서 소수지성으로의 변화

DIARY

by 정이안

인터넷이 발전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나는 "집단지성"을 꼽고 싶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게시하고, 다수의 의견을 통해 특정 문제에 대해 대략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건 정말 앨빈 토플러 형님이 말했던 "제3의 물결" 아니겠나? 정보화 사회가 딱 이렇게 도래한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을 보면서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댓글이든 커뮤니티 글이든, 비밀 답글이 부쩍 많아진 것이다.


‘아니, 프라이버시를 건드리는 민감한 얘기도 아닌데 굳이 왜 비밀로 적는 거지?’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역시나 누군가는 물어보더라. 나처럼 궁금했는지.

그랬더니 대부분 이렇게 말하더라.


"100% 확신이 없는 답변을 하면 물어뜯겨요."
"개인 의견이 들어가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요."
"워딩 조금만 잘못 써도 난리가 나요."


사람들이 인터넷에 무언가를 올릴 때에 모두가 만족할 답만 올려야되는 세상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분위기는 나도 겪어 봤다.

내 경우에는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라는 말의 신봉자이기 때문에

내 경험에 대한 기록적인 측면이 강하기도 해서, 유튜브에 콘텐츠를 올리거나 블로그에 글을 쓸 때,

개인적인 생각이나 추측을 적는 것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러이러한 근거 자료가 있으니 이럴 가능성이 높다~”
혹은
"이런 과정들이 생겼기 때문에 내 경우는 이렇게 처리를 해서 이런 결과물을 얻었다."

라고 말하거나,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대충 땜빵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근거 자료가 부족하네!”
“이 단어는 여기서 쓰면 안 됩니다!”
“너 틀렸어. 끝!”

결과적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의 맥락이고 뭐고 다 무시되고,

잘못된 부분만 확대해서 지적하며 나를 전부 부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집단지성이라는 건 100% 정답을 도출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집단지성은 여러 사람이 만들어낸 교집합 같은 답변에 가깝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는 맞을 수도, 누구에게는 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장비의 구동 드라이버를 설치한다고 해보자.

어떤 사람은 되고, 어떤 사람은 안 될 수 있다.

이건 각자의 상황, 조건, 환경,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연중무휴로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인류가 대륙마다 다르게 발전한 이유도 이런 것 아닌가?


각자의 조건이 다르니까, 다르게 흘러간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이 사실을 잊고, 모든 상황의 답이 같아야 한다는 착각 속에서 "틀렸다"며 물어뜯는다. 내가 이런 문화에 너무 지쳐서, 이제는 내 노하우나 경험을 인터넷에 공유하기도 싫어졌다.

(뭐 나의 노하우나 경험이 얼마나 인류사에 도움이 되겠느냐만은...)


아무튼 나와 똑같이 느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분위기로 말미암아,

앞으로는 집단지성보다는 소수지성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다.

내 경험담이나 노하우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지 않고, 나처럼 생각이 맞는 소수의 사람들끼리만 공유하지 않을까?

(혹은 개인화된 AI 가 나오는 시점에 본인의 사고패턴을 이해하는 AI 에게만 공유할지도...?)


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인터넷에 뭘 올리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걸 겪다 보니, 이제는 그냥 나랑 비슷한 사람들끼리 조용히 정보를 나누는 게 편하다.

결국 언젠가는 모든 세상 만물에 특이점이 오는 것처럼 집단지성이, 소수지성으로 가는 것도 이 또한 시대의 흐름이라면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부처도 말했다. 諸行無常 (제행무상: 모든 것은 한결 같을 수 없으며 모두 변한다.)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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