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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원동력과 증명: 음악인으로 성장하는 법

음악 딴따라 이야기

by 정이안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는 것."


그렇다면 스스로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필요하고, 또한 내가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증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에 대한 확실한 기준점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내가 성공했다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며칠 전에서야 그 기준점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었다.

어차피 이 글은 개인적인 블로그에 올릴 글이므로 부담 없이 내 생각을 풀어보려 한다.


나에게 있어 성공의 가장 강력한 증명은 바로 과거에 나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던 사람들이

다시 나에게 연락을 주는 것이다. 그것도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나는 그들이 과거에 나에게 했던 행동들을 절대 잊지 않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존재가 지금의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버렸다.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

내게 고개를 조아리며 아첨하는 연락을 너무나도 받고 싶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1. 내게 본인의 부모님을 욕했다는 누명을 씌우고 나서, 자기는 속 좋게 탈퇴하고 연락 두절하며, 결국은 내가 만든 밴드를 해체시킨 4년간 동거 동락했던 멤버.


2. 앨범 수록곡 총 10 곡 중에 8 곡이 내 거였던 어느 밴드의 앨범이 있었다. 그리고 발매 이후, 같이 앨범을 만든 것이니까 저작권료까지 1/n로 나누자고 주장했었던 멤버가 있었다.

(저작권료: 판매액의 10% 로 저작권협회를 통해서 받게된다. 즉, 앨범 판매액이 1만원이면 저작권료는 1천원이다. 저작권자의 고유한 재산권으로 해당 곡을 만들지 않은 사람이 저작권료까지 나누자고 하던 그 근거는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그래서 ‘이럴 거면 왜 처음부터 곡 작업에 참여를 안했냐' 고 내가 물었다. 본인이 원래 받아오던 곡비가 200 만원이니까 안 했었다고 했다. 앞으로 본인의 곡을 원한다면 곡당 200 만원을 달라고 주장했었던 그 밴드 멤버.


3. 가수 해보는게 꿈인데 돈이 없다길래, 내 입장에서는 최대한의 선의로 내 자비를 들여 곡 만들어서 앨범 발매해주고 나니까, 자기가 없었으면 불러줄 사람이 없어서 발매도 못했을 것이라면서, 앨범 수익은 보컬 50% : 나 50% 으로 주장했던 보컬이 있다.

당연히 해당 요청을 내가 거부하니까 깽판 부리고 악덕 제작자인양 쌍욕을 했던 보컬 서씨.

(이때가 때마침 동방신기가 삼방신기 / 이방신기로 나눠질 때라 다들 제작자에 대해서 욕하던 사회적 분위기였다.)


4.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날이면 날마다 내가 올린 옛날 사진까지 좋아요 눌러가면서 알림 창을 띄우길래 뭔가 싶어서 연락을 취해보니까 내게 도움을 청하는 음악 하는 사람이 있었다.

만나보니까 평생에 걸쳐서 은혜를 갚아야 될 사람의 이름들을 본인의 다이어리 뒷칸에 적어놓는데, 거기에 내 이름도 있다면서 심경고백 (?) 비슷하게 해 놓더니 나에게서 실컷 빼먹을 거 다 빼먹고 더 이상 빼먹을 거 없는 분위기 되니까 바로 손절매하셨던 쿨하디 쿨하신 그분.


5. 계약서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400 만원을 떼먹혔으나, 관계의 유지를 생각해서 내가 제작한 음반들을 다시 넘겨받는 조건으로 좋게좋게 넘어갔던 동업자가 있었다.

하지만, 법인 전환에 대해 논의 하던 때, 법인전환 이후에 본인이 빌렸던 개인의 대출 빚 또한, 회사 자본금이었다는 논리로 법인의 빚으로 희석시켜서 동업자가 해당 대표의 개인 빚까지 갚아야되는 꼼수를 써보려했으나, 내가 법인전환을 거절하면서 실패하였던 적이 있다.

이후에 내 4대보험도 떼먹고 음원 정산료도 떼먹고, 퇴직금도 떼먹으려는데 이건 노동청에 바로 신고 할 것 같은 각 나오니까 그나마 퇴직금은 합.의.하.에 조건부로 주셨던 음원유통사 동업자.


6. 나이 40 먹은 사람이 정산료 고작 10 만원 때문에 연락을 한다며 화를 내시며 자신의 시간과 돈은 아까운 줄 알면서 남의 시간과 돈은 개똥으로 보시는 위 회사 대표의 동생분.


7. AOMG 와의 미팅 시간에는 30분 일찍 도착. 나와 작업하는 녹음 당일날에는 항상 30분씩 늦게 도착하시던 고무줄 시간개념의 야망넘치던 보컬분. (혹시 싶어서 적어놓지만, 같이 의리와 정으로 으쌰으쌰하는 사이가 아니었고, 서로 합의가 된 금액을 드리는 비즈니스 관계였다.)


8. 내게 유통을 맡기려는 척하며, 온갖 정보와 팁을 다 묻고선 내가 알려준 팁 그대로, 어느 유명 유통사에게 유통을 맡기고 이후 연락 두절해버린 기타 치는 동생.


9. 애플 아이튠즈 계약 진행에 대해서는 나에게 쉴 새 없이 묻고 미팅 자리까지 만들고 하더니 정작 내 음반 좀 유통해줄 수 있냐는 유통 문의에는 1년 치 분량 이미 다 찼다며 거두절미했던 하루에 한 장의 음반만 발매하는 나름 인지도 있는 유통사.


10. 유명한 사람만이 음악업계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불만의 처리를 진행하면 좋겠다고 고마운 조언을 주신

큐XX 회원들.


이 외에도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지만, 이 정도로도 내 성공의 원동력을 설명하는 데 충분할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굉장히 높은 기준과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흡족하게 만들어 내게 다시 손을 벌리게 하려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할까?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이제 ‘성공하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에서 ‘그들에게 연락받을 정도로 성장하고 싶다’는 명확한 목표로 바뀌었다. 앞으로 나는 더욱 정진할 것이며, 언젠가 이 사람들로부터 다시 연락을 받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내게 상처를 주었던 그들의 연락이, 나의 성공을 증명하는 순간이 될 테니까.


납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마음을 다시 부상시키려면 감정은 죽이고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움직여야 한다.

https://youtu.be/jRuzhK9cfLQ?si=y1eCbln_m0auqG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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