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도 통제하지 못한 북방의 야수, 이징옥의 기괴한 반란
역사를 다루는 미디어는 으레 충신과 역적의 얄팍한 프레임으로 세상을 나눈다. 1453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계유정난'. 우리는 이 피비린내 나는 쿠데타에 반발한 이들을 사육신 같은 고결한 선비들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진짜 현실 정치는 도덕책 밖에서 훨씬 폭력적이고 기괴하게 돌아간다. 당시 조선의 최전방, 눈보라 치는 북방 함길도에서 수양대군을 향해 가장 먼저 칼을 빼 든 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징옥(李澄玉).
여진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는 북방의 총사령관, 함길도 도절제사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반란을 일으키며 내세운 명분이다. 그는 뻔한 레퍼토리인 "가엾은 단종을 복위시키자"며 울부짖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조선 50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스케일의 도발이었다.
아예 조선의 신하임을 포기하고, 국경을 넘어 스스로 '대금 황제(大金皇帝)'에 즉위해 버린 것이다.
미치광이의 망상이었을까? 실무자의 관점에서 당시의 판을 읽어보면 소름 돋는 계산이 숨어있다. 대금(大金)은 과거 동아시아를 호령했던 여진족의 거대 제국, '금나라'를 뜻한다.
이징옥은 북방의 병력만으로 수양대군이 장악한 조선의 중앙 정규군을 뚫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철저한 군인이었다. 수만 명의 여진족 기병을 단숨에 자신의 군대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핏속에 흐르는 '과거 제국의 영광'을 자극해야만 했다.
북방의 포식자였던 이징옥 본인이 직접 "내가 너희 선조들의 위대한 제국을 부활시켜 주겠다"라고 선언한 것. 이는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압도적인 군사력을 끌어모아 중앙 조정의 목줄을 쥐기 위한 극단적이고도 정교한 정치 공학이었다.
스스로 대금의 황제가 된 이징옥은 수만의 기병을 규합해 한양을 향해 남진을 선포한다. 조선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하지만 폭력으로 쌓아 올린 권력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의 폭력에 의해 무너지는 법이다. 북방의 야수가 한양의 심장부를 찌르기도 전, 반란은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수양대군이 내건 엄청난 현상금과 권력에 눈이 먼 그의 직속 부하, 정종(鄭種)의 기습적인 배신과 암살 때문이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수양대군은 왕(세조)이 되었고, 이징옥은 반역자를 넘어선 해괴한 미치광이로 역사서 한구석에 묻혔다.
그러나 명분이라는 우아한 포장지 한 꺼풀만 벗겨내면, 역사의 민낯은 늘 이토록 서늘하다.
왕이 되기 위해 조카의 피를 마신 권력자.
그 권력을 부수기 위해 스스로 오랑캐의 황제가 된 무장.
그리고 그 황제의 등 뒤에 칼을 꽂은 부하.
단언컨대, 권력의 속성은 600년 전 북방의 눈보라 속이나, 지금 우리의 현실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진짜 무서운 것은 눈앞의 적이 아니라, 등 뒤에서 숨죽이고 있는 욕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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