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비빔 국수, 욕심은 늘 두 젓가락 남는다

by 서모니카

내가 갑자기 배고플 때마다 엄마가 뚝딱 만들어주는 메뉴가 있다. 바로 김치 비빔 국수.
냉장고에 늘 있는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간장·설탕·참기름·김치국물만 있으면 끝.
기세 좋게 국수 삶아 찬물에 헹궈 양념 넣고 휘리릭 비비면, 한 그릇 가득한 김치 비빔 국수가 단 10분 만에 내 앞에 놓인다.

그런데 문제는 양이다. 엄마가 국수 잡는 걸 보면 꼭 아쉽다.


“엄마, 나 지금 엄청 배고파. 엄마가 잡은 국수 양의 두 배는 먹을 수 있다니까?”


내가 그렇게 투덜대면 엄마는 늘 같은 말을 했다.


“너무 배고플 때 양 잡으면 꼭 음식 남아. 허기질 때는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을 것 같은 기분이지만 실제로는 안 그래. 그래서 엄마는 허기질 땐 장보러도 안 가. 배고파서 이것 저것 다 먹을 것 같아서 괜히 쓸데없이 많이 사거든.”


내 말이 맞나 보자며 한 번은 고집을 부렸다. 평소보다 양을 훨씬 많이 삶아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한숨을 쉬면서도 결국 더 삶아줬다. 그날 나는 국수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겠다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뻔했다. 거의 다 먹어갈 무렵, 젓가락 끝에는 늘 두세 젓가락 분량이 남았다. 배는 이미 올챙이처럼 불룩 차올랐고, 더 먹자니 맛이 느껴지지도 않고, 덜 먹자니 괜히 억울했다. 결국 포기했다. 엄마는 말없이 그릇을 치우면서 웃었다.


살다 보니 그런 일이 많았다. 무언가 너무 결핍되어 있고, 그래서 그것을 너무 원할 때, 꼭 필요한 만큼만 얻기가 참 어렵다. 허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욕심을 잔뜩 부리지만, 막상 손에 넣고 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버겁다.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유독 외롭고 세상과 동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허겁지겁 밥을 먹듯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연락이 뜸하던 친구를 갑자기 불러내 밥을 먹기도 하고, 대뜸 일회성 취미 모임에 나가보기도 한다. 익명 단체 톡방에 들어가 아무 말이나 지껄일 때도 있다.


그렇게 급하게 먹은 관계는 당연히 소화되지 못하고 내 몸과 정신에 무리가 됐다.

얼마 가지 않아 내가 억지로 만든 이 다수의 관계들을 어쩔 줄 모르고 내가 먼저 나가 떨어진다. 모임에 점점 불참하게 되거나,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화들짝 놀랄 정도로 노이로제에 걸리기도 했다. 혹은 통장 잔고가 바닥나서 더이상 밖으로 나가돌 수 없게 되거나. 어쨌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버리는 거다.


커리어적 기회의 순간도 마찬가지다. 너무 원했던 프로젝트나 일자리가 눈앞에 닿을 듯할 때, 무리해서 전부 잡으려고 달려든다. 그런데 정작 하고 나면 체력이든 마음이든 다 소진되고, 결국 끝까지 못 간다. 스스로의 기세에 속아 미래의 에너지까지 끌어다 써버리는 것이다.


엄마의 국수 양 조절은, 내가 세상을 살면서 조금씩 깨달은 것과 똑같았다. 너무 간절할 때는 달려들지 말고, 마음을 아주 조금만 가라앉혀라. 허기와 들뜬 마음이 차분해지면 비로소 정확한 양이 보인다. 그리고 그 양이 대개 딱 맞는다. 딱 맞아야 맛있다.


김치 비빔 국수를 먹을 때면 엄마의 조언이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마지막 젓가락을 들었을 때, 배가 너무 불룩하지 않다면 안도한다. 아, 이번에도 욕심내지 않고 적당히 멈출 수 있었구나, 하고.


<배고플 때 뚝딱 만들기 좋은 김치 비빔 국수 레시피>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센 불에서 팔팔 끓인다. 물이 끓으면 국수를 넣고 살살 풀어가며 삶는다.
면이 다 익기 직전에 찬물 한 컵을 부어 끓어오른 걸 슬쩍 가라앉히면 면이 더 쫄깃해진다.

-삶은 국수를 찬물에 여러 번 헹궈 전분기를 뺀다. 마지막엔 얼음물에 헹궈주면 면발이 탱탱해진다.

-큰 볼에 간장 2큰술, 설탕 1큰술, 참기름 1큰술, 김치국물 3큰술을 넣고 잘 섞는다.

-송송 썬 김치를 넣고 양념과 함께 잘 섞는다.

-물기 뺀 국수를 볼에 넣고 젓가락으로 골고루 비빈다. 양념이 면에 고르게 스미도록 비비는 게 포인트.

-접시에 담고 총총 썬 쪽파나 부추, 볶은 깨를 곁들여 올리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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