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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모니카 Jun 07. 2020

친애하는 그대들에게

오래된 친구들에 대하여




중학생 때 처음 만나 인생의 거의 절반쯤을 함께 보낸 친구를, 꽤 오랜만에 만났다. 모처럼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은 전시가 생겼는데 혼자 가고 싶지는 않던 차에, 친구가 흔쾌히 같이 가주기로 한 덕분이다. 실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대충 머리를 굴려보니 우리가 살아온 날의 절반을 같이 보낸 셈이었다. 새삼 얼마나 놀라운 시간이람. 수업시간에 스케치북으로 필담을 주고 받았다든가, 책상 한쪽에 좋아하는 아이돌 사진을 열심히 붙였던 것, 내가 펌을 하고 등교했다가 걸린 바람에 교무실에 끌려가 머리를 싹둑 잘렸던 일 같은 걸 공유하고 있는 사람.

사람들과 척을 지는 일이 드문 만큼, 썩 가까워지는 일도 드문 나에게- 누가 물어보았을 때 단번에 '친하다'거나 '가깝다'고 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들이 있다. 대체로 오래 된 친우들인데- 그렇다고 알고 지낸 사이가 오래 되었다 하여 모두 친한 것은 절대 아니다. 친한 이들의 면면을 떠올리며 그들의 공통점을 꼽아보니 몇 가지쯤이 생각났다. 서로를 닦달하지 않는 것, 장난으로나마 서로를 절대 무시하지 않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각자의 인생을 성실히 살아내는 것,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 쉬운 것 같아 보여도 막상 실천하기는 또 되게 어려운 일들이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그럼에도, 건전한 관계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할 일들이기도 하고.

어딘가에 내어 놓아도 "저랑 정말 친한 친구입니다!"하고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친애하는 그대들이여. 부디, 앞으로도 이대로만 잘 지냅시다. 제가 겉으로 티는 안 내도 언제나 그대들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꽃 한 송이 절실할 때는 언제든 찾아주시고요. 언제든 기분에 맞는 꽃 한 송이쯤은 사들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앞서 말한 이 친구가,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너 요즘 도 닦니? 되게 도인처럼 말한다. 해탈한 것 같아'하고 말했다. 무슨 말을 해도 '흐흥'하며 웃어 넘긴다거나, 아주 화날 만한 이야기를 전해 들어도 '아, 그랬어?'하고 넘겨 버리니 되게 의아한 눈초리다. "으른 됐구만, 으른"이라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하던 친구는, 내심 발랄하던 어릴 적 내 모습이 그리운가 보다. 미술관 입장을 기다리며 잡담을 나누다가, 친구의 향수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며 "향수 혹시 도손이야?"하고 묻자 친구는 "어어, 도손"하고 답했다. 나는 "이런 포근하고 달큰한 향 오랜만에 맡는다"고 즐거워했다. 친구는 "그러고 보니 그렇네. 너 고등학생 때나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달달한 향수 좋아했잖아"라고 말했다.

이십대 초반까지는 안나수이나 페라가모 같은 달큰하고 사랑스러운 향수를 좋아했더랬다. 그러다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롤리타렘피카의 향수들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취업 직후부터는 대체로 풀이나 나무, 흙 냄새가 나는 향수들을 뿌리기 시작했다. 지인들의 평가를 빌리자면 '태국 사찰에서 나는 향' 또는 '청초하게 잘 생긴 오빠한테서 날 것 같은 향' 같은 것들.



최근에는 블랙 티셔츠와 블랙 슬랙스를 같은 재질과 디자인으로 몇 벌씩 사들였다. (블랙 슬랙스는 이전에도 이미 재질별, 핏 별로 몇 벌씩 가지고 있었다.) 아침마다 옷을 골라 입기도 귀찮아서 내린 결정이다. 일종의 전투복이나 유니폼 같은 거지. 날이 쌀쌀하면 위에 가디건이나 얇은 코트 같은 걸 걸쳐 입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외출한다. 너무 차려입은 것 같지도, 그렇다고 또 너무 막 입은 것 같지도 않아서 적당하다. 그러고 보니 옷차림도 그렇네. 대학생 때만 하더라도 화장을 하지 않았거나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만큼 외모 치장에 관심이 많았다. 발 뒤꿈치가 다 까져도 꼭 하이힐을 신었고, 시즌 별로 쏟아지는 립스틱을 색깔 별로 사모았다.

적당히 힘을 빼는 법을 배워나가는 중이라 생각하고 있다. 치장이든, 취향이든, 관계든 간에- 모든 방면에 힘을 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가는 중이다. 아낀 힘을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배우는 중이라 시간을 더 들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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