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놔야 산다

엑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고

by 내려놔야 산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유일한 길인 줄 알았습니다

남들보다 한 뼘이라도 더 멀리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가야만

지도 위에 내 이름 석 자 남길 줄 알았습니다


​엔진은 과열되어 비명을 지르고

계기판의 바늘은 위험하게 떨리는데

멈추면 뒤처질까 봐,

놓치면 끝일까 봐

엑셀러레이터를 밟은 발에 힘을 주었습니다


​문득, 창밖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곁에 선 사람의 얼굴도,

길가에 핀 계절의 기척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선(線)이 되어버린 삶


​이제 그만 발을 떼어봅니다

속도를 내려놓으니 비로소 멈춰 서는 풍경들

먼지 쌓인 신발 끝과

이제야 제 박동을 찾는 심장 소리가 들립니다


​빨리 가지 않아도 길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천천히 걸어야

길 위의 돌멩이 하나, 바람 한 점이

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래요, 내려놔야 삽니다

속도를 버려야 비로소 목적지가 보입니다